예수는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나라는 좋은 씨를 가진 사람과 같으니, 밤에 그의 원수가 와서 가라지의 씨를 뿌렸다. 주인이 하인들에게 가만 두라 하고 이르되. 가라지를 뽑다가 밀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추수 때가 되어 가라지가 드러나면 뽑아 불사르게 하리라”(도마복음 57).



   “추수 때”를 일반적으로 “마지막 날”*로 해석한다. 그러나 예수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고 말씀하셨다. 즉 진리(One)를 믿는 자는 “죽음의 몸”(ego)에서 “생명의 몸”(true Self)으로 옮겼으니 종말과 심판의 날은 없다는 것이며, 주객(主客)을 초월한 하나님(One)은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좋은 씨를 가진 사람”은 빈부(貧富)와 귀천(貴賤), 밀과 가라지 등의 분별하는 이원성(ego)을 소멸하고 “神性을 깨달은 자”(One)이다. 주객(主客)은 서로 대립관계가 아니라 도와주는 상보적(相補的) 관계이기 때문에 “하나(One)인 천국”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좋은 씨”(빛)와 “나쁜 씨”(어둠)의 인연에 쫓지 말고 가만히 두면 저절로 해결이 되어 진다.

 

   천국은 종말론적으로 이 세상에 세워지는 하나의 사건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不二의 진리를 자각하는 경지”(One)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구하는 이마다 받게 되는 것”(마 7:8)이며, 지금은 “가라지 같은 삶”(ego)을 사는 자도 예수가 던진 “새롭게 하는 불”(눅 12:49)을 만나면 바로 지금 여기서 “밀과 같은 삶”(true Self)으로 변화가 된다.



* 예수가 말씀하신 “마지막 날”(요 6:39, 40)은 금방이라도 도래할 종말을 설명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는 무관하게 “거듭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심판(크리노)은 주객으로 나누어진 하나님에 의하여 “우주의 종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는 것”(갈 6:7)으로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따르는 것이다(善人善果 惡因惡果).

  “하나님은 죽은 자가 아니라, 살아있는 자를 심판하는 주님”(마 22:32)이시며, 예수께서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용서하신다고 생각하느냐?(야고보 비밀의 書 14)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가 저지른 일의 과보(果報)를 자기가 받는”(自作自受) “하나님의 법칙”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시 73: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