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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예수의 죽음"


성경 본문

로마서 5장 5∼11절

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11.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설교 요약

그동안 우리는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성경 중에서 큰 인물들이 전적 하나님의 은혜로 소명이 되었고 은혜로 축복을 받은 것을 보았습니다. 온전히 주님의 주권적 복이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어떠한가를 살펴봄이 좋을 줄 압니다. 본문은 1~5까지는 은혜로 의인이 된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려야 함과(1) 즐거워하여야 함과(2) 어떤 환란이 오더라도 그 환란을 인내와 연단과 소망을 이루게 됨을 교훈합니다.(4) 이런 축복을 누림은 성령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된 연고이라고 하였습니다.(5) 그러므로 우리는 평화롭게 살아야 하며, 즐거워하여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1.내가 아직 연약할 때 그리스도께서 날 위하여 죽으셨습니다.(6)

여기서 연약한 때란‘성령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는 참된 영적 생명의 힘을 갖지 못한 때’를 뜻합니다.(마이어) 이 연약은 죄에 대한 방어력이 없습니다. 지은 죄에 대하여 해결책을 알지 못합니다. 이 연약은 경건한 삶은 모릅니다. 선을 행하기에 무기력하며 스스로 구원할 능력이 없는 상태입니다.

연약 그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연약은 죄의 문 앞에 간 것입니다. 연약을 소유한 상태에서는 사람답게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연약한 상태일 때에 날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나의 연약은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는 동기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연약을 참아보시지 못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이러한 죽으심으로 우리는 강하게 되었으며 담대함을 지니게 되었으며 승리적 삶을 살게 되는 기초를 마련하신 것입니다.


2.내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주님은 날 위하여 죽으셨습니다.(8)

죄인 되었을 때란, 어쩌면 연약한 자리에서 한 걸음은 더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나를 위하여 죽으심은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신 것입니다.

요 3:16에 나를 위하여 독생자를 주신 만큼 사랑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혹시 세상에서도 누구를 대신하여 목숨을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7) 그러나 정말 죽을 죄인을 위하여 대신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는 자는 없습니다. 죽어주실 가치라고는 전혀 없는 날 대신하여 죽어주신 주님이야말로 참 사랑이요, 이에서 더한 사랑은 없는 것입니다.

무용성의 나를 중요성의 존재의 시각으로 보시고‘내가 너를 이만큼 사랑을 한다’고 하심을 십작4ㅏ에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요한 칼빈은‘하나님의 선수적인 사랑이요 속에서 솟아난 사랑이요 우리의 자세나 정성에 유도됨이 없이 먼저 사랑하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확증한다’는 것은 법정용어로‘같이 선다’는 것입니다. 둘을 동시에 세워서 증명을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건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의 확증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3.내가 하나님에 대하여 원수되어 있을 때 주님이 죽으셨습니다.(10)

연약할 때(6), 죄인되었을 때(8), 원수되었을 때(10)라는 것은 무슨 단계가 아닙니다. 같은 의미를 이해를 위하여 세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일연의 사상의 진보를 엿 볼 수 있습니다. 연약하기에 범죄하고, 범죄함으로 원수가 된 것입니다. 이 원수됨은 하나님이 범죄 한 인간을 미워하셔서 원수 관계에 놓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관심조차 없고, 오히려 적개심을 지닌 나를 위하여 그 생명을 주심은 상상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죄를 간과하시는 데서가 아니라 그 죄의 상태에 대한 깊은 원한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런 원한이 인간 편에서의 깊은 죄에 기인하였으므로 그 죄가 제거되기까지는 화목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성자 예수님이 오셔서 나의 죄를 대속하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시고 우리에게 임할 진노를 멈추게 하시고 하나님과 나 사이의 화목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본문의 화목하심의 문장이 분사형으로‘하나님의 화목이 십자가에서 시작이 되어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효력이 계속 되고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이런 은혜의 장지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경건도, 구원도, 화목도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놀라운 일로 우리는 존재하며 복을 누립니다. 평화를 유지하십시오. 즐거워하십시오. 그리고 이 사랑을 날마다 누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