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을 기다리며
글, 김 의 준 장로
하늘을 날아야 할 것이
땅에서 엉기는 비극이여!
무한한 것에서
유한한 것을 그리워하고
산 자들의 것에서
죽은 자들의 것을 바라는 어리석음이라.
처음이요 나중인 그분 안에는
크기도 횟수도 없어 오고 감이 없나니
시간과 공간에 매일 수 없음이라.
그분이
하나님 우편 보좌에서
구름 타고 오시면 백년하청百年河淸이요
우주 저 끝 어디쯤에서
빛을 타고 오신다면
수십억 광년은 족히 걸릴터이니
재림을 기다림은
다른 것을 기다리는 불경不敬 아니면
도리어 주님이 내게 오심을 부정하는 것.
진리이신 그분은
오매불망寤寐不忘 우리가 바라는 실상이요
어느 날 도둑처럼 찾아와 내 안에 깃드시는 분.
그분은 우리의 필요에 따라
가고 오는 유한한 분이 아니니
나를 세상에 몽땅 빼앗겨
항상 나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을
망각하고 사는 어리석음이라.
장로님의 詩는 예수님스스로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Before Abraham was born, I AM)"고 말씀하심으로서 자신은 "오고 감이 없으며(不來不去), 시간과 공간에 매일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가시고 오시는 대상화로서 한계를 지우는 무지한자들에게 많은 깨우침을 주는군요.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마 1:23)의 삶과 죽음을 초월한 예수님은 지금 여기에 현존(現存)하고 계시기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에서 "내(I)"의 의미는 역사적이 아니라 우주적이며 보편적인 의미임을 명심하여야 하겠습니다.
즉 역사적으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영원한 "내(I)"를 잘못 해석한 결과로서 무한한 사랑의 기독교가 배타적이며, 독선적이 되어질 수 밖에 없었기에 몇백년간 수많은 인명의 앗아간 십자군의 전쟁, 마녀사냥과 같은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하여 東, 西洋의 앎을 통한 진리에 대한 폭넓은 접근이 간절히 요청되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