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즉 생 (死 卽 生)
글, 김 의 준 장로
하나를 투자하여
그대로 하나를 얻는 것은
밑지는 장사요.
유한한 것을 투자하여
무한한 것을 얻는 것은
대박 난 장사 아닌가.
죽어야 사는
하늘의 거룩한 상술을
깨닫지 못하고
무한한 것에서
유한한 자국을 더듬는 자는
비참한 소경이니
공동묘지에서 시체가
떼 지어 일어서고
항아리에서 뼈 가루를 뒤집어쓰고
그렇게, 살아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창조주를 무덤 속에서 찾는
어리석음이라.
우리는 원래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
그분의 생기로 숨쉬는
그분과 하나된 소중한 자녀이니
유한한 언저리만 맴돌지 말고
그대 영혼의 근저(根底)에서
창조의 영원한 흔적(痕跡)을 찾으라.
유한한 것 안에서는
모든 것이 사망이지만
무한한 것에서는
모든 것이 되살아나나니
부활(復活)은
진리의 나팔소리에 흥겨워
썩을 것이 영원히 썩지 않을 것으로
거듭나는 것이기 때문이라.
부활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와 같이 매 순간 겉사람인 거짓자아(ego)를 죽여 성령인 참 자아(True Self)를 깨닫는 즉 “죽어야 사는”(死卽生) 진리대로 옛사람을 버리고 새사람으로 다시 사는 것이라는 의미이군요.
부활은 우리들이 예수님과 같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아는”(요 10:38) 영원한 생명을 가지는 것이며, 분별적인 이 세계의 시공간을 초월하기에 죽음과 개별적 영혼이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되지 않을 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