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가는 길은 땅에 있다"라는 의미는 "천국에 가는 길은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있다"라고 할 수 있을 까요? 왜냐하면 예수님은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고 말씀하심으로 저 멀리 다른 시간이나 공간에서 천국을 찾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눅 17:33)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는 자기부정, 자기포기, 자기초월 없이는 결코 주어지지 않는 사랑이 넘치는 세계이며, 우리들과 하나님을 분리시키는 이분법적인 ego의 죽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절대적이며 영원한 세계가 아닐 까요?
하나님나라는 사후에야 비로소 주어지는 세계이기 전에 ‘지금 여기서’(here and now) "편재(遍在)하시는 하나님과의 하나됨을 체험하는 비 이분법적인 삶의 질적 전환"(눅 17:21, 막 1:15)을 통해 이루어지는 영안이 열린 세계이기에 이러한 행복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기 위하여 문화를 초월하여 좋은 방법을 강구하여야 되지 않을 까요?
"천국가는 길은 땅에 있다"라는 의미는 "천국에 가는 길은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있다"라고 할 수 있을 까요? 왜냐하면 예수님은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고 말씀하심으로 저 멀리 다른 시간이나 공간에서 천국을 찾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눅 17:33)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는 자기부정, 자기포기, 자기초월 없이는 결코 주어지지 않는 사랑이 넘치는 세계이며, 우리들과 하나님을 분리시키는 이분법적인 ego의 죽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절대적이며 영원한 세계가 아닐 까요?
하나님나라는 사후에야 비로소 주어지는 세계이기 전에 ‘지금 여기서’(here and now) "편재(遍在)하시는 하나님과의 하나됨을 체험하는 비 이분법적인 삶의 질적 전환"(눅 17:21, 막 1:15)을 통해 이루어지는 영안이 열린 세계이기에 이러한 행복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기 위하여 문화를 초월하여 좋은 방법을 강구하여야 되지 않을 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