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서 지금 70대 후반에 이르렀다. 요즈음에는 나의 一生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자주 갖게 된다.
동생을 두 돌 전에 일찍 봐서인지 나는 어머니의 젖을 충분히 받아먹지 못했다. 할머니께서 이것을 애처롭게 여기어 할머니의 방으로 데려가 미음을 먹이며 자라게 하였다. 이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방에서 기거하며, 장가가는 날 前日까지 할머니 옆에서 잤다.

겨울이 되면 아침에 세수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나의 대부분의 생활은 할머니의 방에서 이루어졌다. 할머니는 굳이 더운 물을 방안으로 가지고 와서 그 방에서 세수하라고 하셨다. 내가 감기 들까봐 걱정되어서였다. 이로 인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자주 다투셨다. 아이를 망친다 너무 귀하게 기른다고 할아버지는 염려하셨다. 물론 다른 형제들은 밖에서 세수했다. 이런 일은 분명 과잉보호라고 생각한다.
소학교에 다닐 때 할머니는 직접 도시락 반찬을 만들어 주셨다.

어느 날 장조림을 싸가지고 갔는데 그 국물이 흘러 책을 다 버리게 되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할머니에게 장조림 건으로 심통을 대단히 부렸다. 할머니는 그 후 장조림을 반찬으로 넣기 전에 미리 실끈에 꿰어서 방안에 걸어두고 수일간 물기 없게 말렸다. 그 후로는 장조림으로 인해 책을 망치는 일은 없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할머니의 정성과 사랑은 참으로 대단하였다. 벌써 60여년 전의 일인데 요즘에도 일부 할머니들은 손자에게 이렇게 봉사, 사랑, 정성을 쏟는 줄로 안다.

최근에는 부엌에서 사용하는 용기가 발달해서 국물이 흐르는 경우는 대단히 드물 것이다. 참으로 편리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을 지금의 학생들은 행복하게 느끼는지 모르겠다.
이러한 사랑, 정성이 반드시 좋다는 것은 아니다. 과잉보호를 받으며 귀하게 자라면 나중에 사회생활을 하는데 平凡하게 자란 아이들보다 곤란한 점이 더 많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는 그리 강하지 않다는 것을 유념할 일이다.

                                                     *본 교회 홍인표 집사님의 글입니다. 여러분의 글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