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
글, 김 의 준 장로
옷을 제아무리 아껴 입어도
몇 해 못 가 헤지듯
몸뚱이도 강건해야 팔십인 것을
아브라함 이전부터 계시고
진리요 생명이신 무한하신 분을
무명無明의 사슬에 꽁꽁 묶어
다윗의 족보에 매장埋葬하려는
어리석음이여!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은
용모容貌나 풍채風采가
남달라서도 아니요
혈통이 유별나서도 아니요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이니
무한한 그분을 유한 속에 가두는 것은
영을 질식케 하는 무지라
그때 무지한 그들은
육신을 십자가에 매달더니
요즘 유식한 우리들은
흔적도 없는 육신에 매달려
하나님의 영을 업신여긴
큰 죄 지은 자들
육은 유한한 사람의 아들이요
영은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니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을 분별함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첫걸음이라.
우리가 주님으로써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靈)이기 때문이니, 무한한 그분을 유한 속에 가두는 것은 영(靈)을 질식케 하는 無知"라는 것은 참으로 일리가 있는 주장이며, 지금 전 세계적으로 쇠퇴하고 있는 기독교를 다시 부흥시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진리인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유언과 같은 성격으로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요한복음 17장 21절은 시간과 공간을 벗어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우리들의 영혼을 이해하여야만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 까요? 또한 고진하목사님의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의 책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여 아래와 같이 영적(不立文字)으로 설명한 것은 매우 타당한 해석이 아닐 까요?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옵소서"(I pray that they may all be one. Father! May they be in us, just as you are in me and I am in you. 요 17:21)
"신약성경에도 보면, 예수는 자기 존재의 궁극적 근거를 '아버지' 라 호칭하고, 그 '아버지와 나는 하나' 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제자들도 자기와 같은 깨달음에 이를 수 있기를 그 아버지에게 청한다. 이름과 형태는 다를지라도 이런 인식을 오랜 종교 문헌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어서 나는 참으로 반가웠다."
"I am not to let any gap open up between Jesus and "me". How can I let any gap open between Jesus and me if I share the experience of St. Paul: "I live, now not I, but Christ lives in me. : GALATIANS 2:20"(ROBERT E. KENNEDY의 "Zen Spirit, Christian Spirit"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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