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국 5살미만 어린이 해마다 600만명 '굶어 죽어'


  




17일 빈곤퇴치의날

17일은 유엔이 정한 ‘제10회 세계 빈곤퇴치의 날’이다. 전세계에서 매년 최소한 수백만명이 굶어죽고 있는 현실은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의 빈곤 퇴치 노력이 미미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게다가 지구촌은 소수 부국과 다수 빈국으로 쪼개져 있다. 비정부기구와 개인들의 관심과 참여 또한 미흡하다. 지구촌의 빈곤 및 빈부격차의 실태를 점검하고 대책을 모색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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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는 아이들=아프리카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 사는 아포시 라크웨뭬(16)는 본드 냄새를 맡고서 몽롱한 채 뇌까렸다. “난 다른 세상을 꿈꿔요. 거기선 가난하지 않지요.” 그는 자신을 가장 가난한 나라의 가장 가난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빼빼마른 몸에 찢어진 티셔츠와 청바지만을 걸치고 지내는 그가 밤 거리 추위와 배고픔을 잊는 건 카드놀이를 하거나 본드 냄새를 맡을 때뿐이다. “나보다 가난한 이는 없을 겁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니까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집도 없는 그는 구걸도 하고 빼앗기도 하며 하루하루를 넘긴다.

우간다만의 풍경이 아니다. 다른 많은 나라에서도 거리를 떠도는 수천명의 아이들이 눈에 띈다. ‘거리의 아이들’은 아프리카에서 전형적인 빈곤의 풍경이라고 외신들은 전한다. 하루 1달러도 안되는 돈으로 연명하는 최극빈층은 세계 인구의 20%인 12억명에 이른다. 우간다에서는 이런 빈곤층이 2100만 인구의 절반을 넘는다.

남미 에콰도르의 에스테반 메넨데즈(10)는 바나나 농장에서 하루 종일 바나나를 따고 꾸러미로 묶는 일을 한다. 그가 쥐는 돈은 고작 하루에 3달러다. 가난은 어린이들을 가혹한 노동현장으로 내몰아 세계 10~14살 어린이의 11.3%가 고용돼 있다(2000년 기준).



목숨을 위협하는 가난=해마다 600만여명의 어린이가 5살이 채 안돼 굶주림으로 숨진다. 전 세계에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은 8억4천만명이나 된다. 굶주림의 궁극적인 원인은 바로 가난이다. 개발도상국 인구의 56%가 가장 기초적인 위생여건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죽음의 문턱에 서 있다. 에티오피아에선 600만명이 아사 위기에 놓여 있다. 기온이 가장 뜨거운 오지인 아파르지역의 주민 무하마드 우마르는 “가뭄으로 유일한 생계수단인 가축들이 죄다 죽고 땅도 말라붙었다”며 “먹을 걸 못 구하면 곧 죽게 생겼다”고 하소연했다. 15가구가 남은 그의 마을은 20명의 고아를 돌봐야 할 형편이다. 이웃 마을에선 지난달 13명이 목숨을 잃었다.

말리에선 5살 미만 어린이 4명 가운데 1명이 숨진다. 세계은행이 권고하는 최소한의 1인당 보건의료비는 12달러인 데 비해 이 나라에선 5달러에 불과하다. 올해 27년 간의 내전을 중단한 앙골라에선 최소 50만명이 극심한 기아에 직면해 있다는 국제의료봉사단체의 긴급호소도 나왔다. 잠비아가 1999년 선진국에 빚 갚는 데 지출한 4억3850만달러를 보건의료 부문에 투입하면 현재 20% 가까운 영아사망률을 미국과 비슷한 8%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쪼개진 지구촌=미국과 유럽에서 지출되는 애완동물용 사료비만 합쳐도 전세계인에게 가장 기초적인 보건의료 서비스에 필요한 돈을 댈 수 있다. 일본의 닌텐도가 미국에 포케몬 게임을 팔아 거둔 수입으론 아프리카 르완다와 니제르의 총부채를 갚을 수 있다. 미국 모토롤라의 한해 수익은 아프리카 제2의 경제 규모를 지닌 나이지리아의 한해 국민소득과 거의 비슷하다. 빌 게이츠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등 세계 최고 부자 3명의 재산은 가장 가난한 49개국에 사는 6억명의 연간 소득보다 많다.

50여개국의 개인소득은 10년 전보다 오히려 줄었고 60개국은 20년 전보다 더 가난해졌다. 전 세계 나라의 65%에서 20년 전보다 빈부 격차가 더 심화했다고 유엔개발계획은 최근 ‘2002년 인간개발보고서’에서 밝혔다. 60년에 세계 상위 20%의 소득은 못사는 20%의 소득의 30배였는데 97년엔 74배로 뛰었다. 불평등의 골이 더욱 깊게 팬 것이다.

경제정의 실현을 추구하는 ‘국제주빌리운동’은 “개도국에 보내는 원조액의 13배가 빚 갚느라 선진국에 되돌아가는 현실”이라며 “완전한 부채탕감과 실질적인 원조확대 없이는 빈국들에 어떤 희망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수범 기자 kjls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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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빚탕감·원조확대 '말로만'
미국·유럽연합 등 소극적…빈곤문제 해결 '선언' 그쳐

지구촌의 빈곤 문제는 절대빈곤뿐만 아니라 세계화의 진전 속에 깊어지는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핵심이다. 이런 빈곤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해법은 유엔 등이 주도하는 △부국의 빈국에 대한 원조 확대와 △빈국의 막대한 부채를 탕감·경감하는 안 등 두 방향으로 제시돼왔다.

가뭄 등 재해와 내전 등으로 황폐해진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최빈국들은 당장 원조가 시급한 상황이다. 유엔은 그동안 산하 기구와 국제회의를 통해 지구촌 최극빈층을 위한 각종 지원을 국제사회에 호소해왔다. 올들어서도 지난 3월 각국 정상을 모아 유엔사상 처음으로 빈곤퇴치 합의문인 ‘몬테레이합의문’을 채택했다. 합의문에는 △선진국의 개도국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 증대 △‘고채무빈국채무경감안’의 신속한 이행 등이 담겼다. 유엔은 8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지구정상회의에서도 각국에 빈곤퇴치를 다시금 촉구하는 내용 등을 담은 ‘요하네스버그선언’을 채택했다.

하지만 이 두 선언 다 ‘속빈 강정’이었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했다. 실질적인 해결주체인 미국과 유렵연합 등 부국의 무관심과 비협조로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빠졌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자국의 유명한 투자가인 조지 소로스조차 “너무 작은 규모”라고 비아냥거릴 정도로 빈국에 대한 원조에 소극적이다. 노르웨이통계청의 조사를 보면 1인당 국민총생산 대비 공적개발원조 비율에서 미국은 유엔의 요구사항인 0.7%에 크게 못 미치는 0.1%에 불과하다. 영국(0.32%)·프랑스(0.32%)·일본(0.27%) 등 서방 선진국 가운데서도 꼴찌 수준이다.

이런 상황은 세계빈곤퇴치의 날을 이틀 앞둔 15일 유엔으로 하여금 그 동안 펼친 각국의 빈곤퇴치 노력을 사실상 ‘실패’로 규정하도록 했다. 자크 디우프 유엔식량기구(FAO) 사무총장은 “2015년까지 빈곤인구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96년 세계식량정상회의의 약속이 실패에 직면했다”면서 “2150년에야 목표에 가까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빈국 자신의 노력과 국제기구·구호단체의 지원 등에 더해 무엇보다도 세계화로 이득을 챙기는 미국과 유렵연합 등 부국들이 실질적인 노력을 다 할 때 지구촌의 빈곤퇴치 가 그나마 가닥이 잡힐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창곤 기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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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금 10달러(13,000원)이면 한 어린이 한달 식사"
“당신의 참여로 한 어린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캄보디아의 농부인 친 키스(76)는 요즘 자신의 논 한가운데 서서 벼가 무럭무럭 자란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본다. 그의 논에 물을 공급하는 관개수로는 국제구호단체인 옥스팜의 지원으로 만들어졌다. 옥스팜은 “식량 부족과 가난을 해결하는 장기적인 해결책으로 수로 건설에 자금을 지원했다”며 “후원자들이 매달 내는 기부금이 쓰였다”고 밝혔다. 2만3천여명의 자원봉사자가 있고 100여개 나라에서 빈곤에 맞서 싸우는 옥스팜은 50만여명의 개인 기부자와 정부·단체들이 내는 기부금 등으로 사업을 운영한다.

빈곤 퇴치는 정부나 유엔 등 국제기구의 몫만은 아니다. 비정부기구들도 저개발국의 빈곤층이 겪는 고통을 줄이는 데 큰 구실을 하고 있다. 이들은 빈곤 퇴치에 모든 세계인이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 하루에 2만4천명이 굶어죽고 어린이는 7초마다 한명꼴로 굶주리다 숨지는 상황에서 내는 아무리 적은 기부금이라도 도움이 된다.

남부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현재 60여년 만에 겪는 최악의 식량부족 사태로 국제사회의 지원이 없으면 몇달 안에 1400만명이 심각한 굶주림에 직면할 것이라고 국제구호단체들은 호소하고 있다. 이 지역의 경우 10달러만 있으면 어린이 한 명한테 두 끼의 음식을 한달 동안 줄 수 있다. 다섯 명의 가족이 한달 동안 먹을 수 있는 옥수수 50㎏은 20달러면 충분히 살 수 있다. 100달러로는 6인 가족이 6개월 동안 먹을 수 있는 곡물을 제공한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한 구호단체 간부는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하다”며 “기부자들이 진짜 끔찍한 상황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그때는 이미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며 다급함을 호소했다.

한국에서 저개발국의 빈곤 퇴치에 힘쓰는 기구로는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www.kfhi.or.kr), 월드비전( www.worldvision.or.kr), 굿네이버스( www.gni.or.kr) 등이 있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