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이더라도, 12시 이더라도
전화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영희야. 엄마가 많이 아프데."

"어. 알았다."

자전거를 타고서 계절에 상관없이.
기후에 상관없이. 나의 도울 힘이 있어 도울 수 있었던.
친구입니다.
늘 다리가 아프시기에 다리를 계속 주물러 드리면 되는 일이었죠.

내가 시골에서 "하나님의 기다림의 감옥" 이라는 (이렇게 기록을 남겨놓은 해(年)가
있었습니다.

"내가 여기 있을땐 내 부모님처럼 할께.
내가 한국에 없으면, 네가 우리 부모님의 딸이다!"

그 친구의 아버지께서 오늘 돌아 가셨습니다.

오늘 세시경에 연락을 받아서 차편이 되지 못해 내려가지 못했는데,
내일 아침 일찍 어머니와 함께 가게 됩니다.

그래서, 다음주에 뵙게 되겠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누리는 은혜와 감사가 풍성한 시간을 이시간부터 갖으시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