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노 저어 갑니다.

전에도 저었지만 지금은
지금의 노를 젓습니다.

아침의 눈부신 해도 보았고,
오후의 따가운 해도 만났으며,
풍랑속을 헤매기도 했지요.
뿐만 아니라, 풍랑속에서
주님이 어디계신지 몰라 많이 울어야 했지요.

마가는 말하길 그때 주님이
나의 배에 함께 타고 있었다고 했지만,
전 볼 수 없었어요. <막6:48>

짠 바닷물이 지겨워
노는 젓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암초에 부딪혀 배가 깨질뻔도 했어요.
하지만 저녁엔.
석양빛을 받으며 잔잔한 바다위에서
기뻐할 때도 있었지요.
밤이 되면 곧 항구에 도착 할 줄 알고서 ㅡ.
그러나 이젠 아침이 와도 괜찮아요.
하루가 지난 만큼 소망의 항구에
하루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으니까요.

이제 또 다시 노를 저어요.
힘이 없긴 해도 계속 저어야 주님을
만나뵐 수 있으니까요.
안그럼 저 바다속에 빠질꺼예요.
주님. 날 도와주세요.

앞서 가신분들의 눈물이 바닷속에 떨어졌듯
나의 눈물도 떨어져서 높이가 더 높아졌지만
언젠지 알 수 없는 날
소망의 항구에 꼭 도착하리라 믿어요.
그곳에선 마음의 근심도, 아픔도, 눈물도,
가슴을 찢는 고통도 없고.
오직 기쁨과 감사와 찬양만 있겠지요.

다시 또 노를 젓습니다.
지금 눈물이 흐르지만
바닷물이 더 깊어져 가지만
그러기에 더욱 담대하게
주님 찬양 부르며 노를 젓겠습니다.

주님계신 소망의 항구가
눈 앞에 보여요!

(98년 4월 7일 화요일.)

나 자신의 모습을 보면 구역질 나지요.
역겹기까지 하지요.
하지만, 그래도 살  수 있다는 단 하나의 이유가 되는 것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있습니다.
그 이름이 소망입니다.
그 이름은 위로이며, 생명이며, 삶의 이유가 되어 줍니다.
나를 보면 삶은 쓰레기와 다를 바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 삶은 고귀함 그 자체가 되어져 줍니다.
시가 있는 밤동산에서 늘 들려 주던 카바티나를 올려  봤습니다.
이 음악을 좋아합니다. 혼자만의 무수한 추억들을 보여주는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멋진 추억을 만들어요.
하나님 곁에 갔을 때 하나님과 많은 것들을 나눌 수 있는 깊고 진실한 많은 추억을 만들어요.
나도 한땐 교회 가기 싫었던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나는 그런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주일이 가장 행복하거든요.
육일 동안의 삶 역시 즐겁고 행복해요.
하지만, 난 주일이 너무 좋아요.
지금 이것 만큼이나 주일이 싫고, 교회 가기 싫었던 때가 있었죠.
하지만, 진리를 찾는 방황이 아니라면 그만 둘 필요도 있나봐요.
우리 진리를 찾아 나서봐요.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지요.
그것은 너무나 오묘한 진리인가봐요.
진리!
진리는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립시다.! ^^

아직도 가슴 가득한 진한 감동의 사실의 이야기가 있어요.
사도바울이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끊혀 질지라도 구원 받기를 원했던 친족들이
나는 자신의 가족이라고만 생각 했었죠.
더 나아가서는 친척들.
그런데, 목사님께선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고 하셨지요.
나는 너무 놀랬었죠.
아!
아브라함의 자손들!
닥터 홀 선교사님의 가족은 캐나다인으로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구원하기 위하여
한국의 땅에서 하나님 사랑을 나타 내었지요.
코리텐붐의 가족은 어떠하구요. 그들 역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사랑하여 네덜란드인으로서 유대인을 나치의 손에서 보호해 주며 돌봐 주었었죠.
데이빗 브레이너드 선교사님도...
아.. 정말 무수한 믿음의 사람들... 그들의 가슴에 살아있는 진리. 그것을 우리 찾아 나서 봅시다.
그러면 정말 우리도 멋진 믿음의 삶을 이룰 수 있을 것이예요.

지금 나 자신의 모습을 보면 환장하죠^^
나 같은 경우엔 그래요. 미치고 말 지경이죠^^
하지만, 예수님을 보죠. 내가 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애요.
내가 누구를 보고 있느냐에 따라 내가 변화 될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나는 나를 보지 않기로 작정했어요.
예수님만 바라보기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