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말씀하셨다. “아담으로부터 세례 요한까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위대한 자는 없으며, 그는 누구 앞에서도 눈을 아래로 뜰 필요가 없으리라.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너희 중 어린아이와 같이 되면 하나님 나라를 알겠거니와, 그는 요한보다 더 크리라”(도마복음 46).
여자가 낳은 ‘아담’부터 세례 요한까지에서 세례 요한은 누구 앞에서도 눈을 아래로 뜰 필요가 없을 만큼 위대한 사람이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실재하지 않으며, 오직 진리(천국)뿐이다’(고후 4:18)고 하는 깨달음으로 이원적인 분별 망상을 벗어난 어린아이처럼 된 사람은 세례 요한과 비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영적인 눈’(靈眼)이 아닌 세례 요한과 같은 육적인 눈(ego)으로 보는 것들은 꿈과 그림자로 실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누어질 수 없는 ‘진리의 눈’이 깨어나면 양극을 조화시키는 천국(신성)으로 충만하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마 6:22)라고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로 향하는 구원의 길은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맡기는 절대 의존의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하며, 이때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되어 진다(降伏其心, 마 6:33).
어린아이를 포함한 모든 사람은 그 본래 마음 바탕(自性)이 청정하기 때문에 원죄라는 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自性淸淨心, 마 18:3; 요 9:3). 원죄(原罪)는 아담과 이브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인간은 육체만이다’고 하는 아집(ego)이며, 어린아이처럼 분별을 벗어나 실상(신성)을 바로 보지 못하는 실상 은폐를 가리킨다(요 9:41). 인간의 실상은 ‘신의 자녀’(신성)이므로, 자기가 본래 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 은폐는 사라지는 것이다. 노자(老子)는 “덕을 두텁게 머금은 자는 갓난아이와 비슷하다”(도덕경 55장)고, 맹자는 “대인은 갓난아이의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는 자이다”고 갓난아이의 마음(One)인 신성(본성)을 설명하고 있다.
빛이 어떤 것에 가려져 있는 상태가 어둠이듯이 ‘죄 있는 사람’이란 영원히 빛나는 신성(실상)을 잃어버린 어둠의 상태이다. 죄는 개체적인 겉사람(거짓 나) 속에서만 기능하며, 보편적인 속사람(참나)에서 보면 본래부터 없는 것으로 실재하는 것은 오직 신성(천국) 뿐이다(막 12:32). 어린아이와 같이 된 성자들의 가르침은 현대 과학이 증명하듯이 온 우주는 생명(순수 에너지)로 가득 찬 둘이 아닌 하나(One)라는 것이다(道生萬物, 도덕경 42장). 누구든지 분별을 벗어난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질 때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고, “아미타불의 무량수(無量壽)가 내 안에 살아있다”고 하는 신성(천국)을 체험할 수 있다.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육체는 본래 없으며 진정한 ‘나’는 병과 고통이 없는 신성(그리스도)으로서 둘이 아닌 하나의 실상 세계(천국)에 살고 있음을 자각하여야 한다.
예수가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요 14:28)고 말씀하신 것은 부활과 재림의 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한 내면의 신성 깨달음이다. 신성(천국)은 분별하는 육체의 거짓 나(ego)를 부정하고 어린아이처럼 이원성을 벗어 난 인간에게 하나(One)로서 깃들어 있다(요 17:21). 그러므로 예수는 ‘신의 왕국은 내면에 있다’(눅 17:21)고 하셨다. 우리의 성품은 곧 신(아미타불)이고, 번뇌가 소멸된 청정한 마음이 곧 천국(정토)이다(自性彌陀唯心淨土, 요 10:34, 3:3).
따라서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이원적인 분별을 벗어나서 ‘내가 신이다, 내가 부처이다, 내가 브라흐만이다’(凡我一如)고 하는 ‘하나 됨’을 자각하여야 한다. 이때 우리의 삶 속에 서 조화롭고 평화로운 하나님 나라(실상)가 실현되고 있음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大道常在目前, 요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