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나는 너희를 천 명 가운데 하나, 만 명 가운데 둘을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하나 된 자로서 서 있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다.(도마복음 23)
예정론을 설명하는 구절이 아니라(마 22:14), 허상의 번뇌 망상을 소멸하고 실상의 진리 깨달음으로 하나(One)가 되는 것은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나온 소수라는 뜻이다. 바가바드 기따에서는 “수천 명의 사람들 가운데 한 명 정도만이 완전함에 이르기 위해 노력 할 것이다”고, 황벽선사는 “ 노력하고 또 노력하라. 천 명, 만 명 가운데 다만 3~5명만이 도를 얻을 뿐이다”(傳心法要)고 하였다. 비록 좁은 길이지만 하나의 진리를 깨달은 자는 이원성의 분별심(거짓나)을 벗어나 모든 대립을 초월한 고독한 실존으로 ‘거듭 난 자, 홀로, 하나’로 서 천국(참나)의 환희를 누린다(天上天下 唯我獨尊).
신성(본성)을 회복한 ‘하나 된 자’(獨生子)는 진리를 깨달은 신비한 하나님의 자녀이며, 노자(老子)는 ‘크게 비웃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道’(도덕경 41장)라고 하였다. 생사(生死), 희비(喜悲)의 분별(ego)을 버리고 나눌 수 없는 근본(참나)을 획득한 소수의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하나(One)이며, 지극히 커도 작은 것과 동일하며, 그 가장자리를 볼 수 없는 ‘둘이면서 둘이 아닌 세계’(二而不二)이다. 예수가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고 말씀하신 것은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 주객을 나누는 모든 이원적 분별이 사라져 자유롭게 되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요 1:14) 자유는 석가모니가 진리를 깨달아 해탈(Liberation)하여 이룬 열반 (Nirvana)과 자이나교의 창시자인 마하비라가 내면의 성령(참나)을 깨닫고 성취한 해방된 상태와 같으며, 평화와 행복으로 나아가는 진리(神)의 체험이다(見性悟道).
힌두교에서는 구원에 이르는 길을 ‘깨달음의 길, 신애信愛의 길 그리고 행함의 길’의 세 가지로 나눈다. 특히 ‘깨달음의 길’이란 우주의 신비로운 실재를 꿰뚫어 보는 통찰과 직관을 통해 해방과 자유에 이른다는 뜻이다. 신학자 칼 라너(Karl Rahber)는 “21세기 그리스도교는 신비주의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신비주의적'이라는 말은 문자와 시공간을 초월한 보편적인 진리 깨달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기독교도 이제 루터가 주장한 '오직 성서, 오직 믿음, 오직 은혜'를 넘어 '모든 것이 하나다' 고 하는 진리 깨달음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요 17:21).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궁극적으로 '나는 누구인가?,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이며, 하나인 진리(신성, 불성)를 깨닫기 위한 방편과 수행일 뿐이다(見性成佛, 요 14: 17, 20). 자아탐구의 끝에서 '원하지 아니하는 악을 행하는 이원성의 허상인 거짓 나 '(롬 7: 19)가 소멸 되면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하나의 실상인 참나'(롬 7:22)만 남게 된다. 무지한 사람들은 여러 종교의 ' 하나가 되는 공통의 진리'(참나)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종교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종교적 광신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또한 타 종교인들을 비난 하면서 그들을 자신의 종교로 개종시키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