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갈 2:20)고 하였다.
예수의 ‘자기 비움인 십자가’는 개체의 ‘거짓 나’(妄我)가 사라지고, 하나(One)인 영원한 참나(神性) 즉 하나님과 하나(One) 되는 동일성을 획득하는 영적 생명이다. 예수는 유한한 ego의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One) 되어, 무한한 ‘내면의 영’(神性)을 회복하여 ‘영원한 神인 그리스도(Christ)’로 부활한 것이다. 따라서 “절대자와 하나(One)가 된 예수”(요 10:30)는 빌립에게 “나(One)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고 말씀하였다.
바울의 ‘나’(ego)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엡 4:22)으로 상대 세계에서 고통을 일으키는 그림자와 같다. 그러나 예수가 하나(One)되듯이 바울도 ego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삶 전체가 그리스도(One)의 작용임을 자각하였다. 그는 취하고(取) 버리는(捨) 아상(我相)을 버리고 삶이 이끄는 대로 조화를 이루었기에 영원한 ‘둘 아닌’(不二) 하나(One)의 생명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단일성인 불이론(不二論)*’은 동양 종교들과 통하는 보편적 진리(One)이다.
예수의 십자가는 만민의 죄를 대신 속죄한 것이 아니다. ‘나는 몸이며, 마음이다’라는 거짓 나의 어둠(죄)을 제거하여, 빛인 본래의 참나(그리스도)를 회복하는 영생을 누리기 위함이다. 즉 영원한 그리스도의 탄생이며 영광된 神의 부활이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이 되는 이유는 우리도 예수처럼 십자가에서 죽고 그와 함께 둘이 아닌 생명의 부활에 동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활이란 “하나님은 살아 있는 자(속사람)의 하나님”(마 22 :32)과 같이 시간을 벗어난 영원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지금이다(요 5:25).
* 단일성인 진리의 불이론(不二論)은 절대적인 평등을 말하며, 色과 空은 구별되면서도 다르지 않는 것(色卽是空) 즉 “하나가 아니면서 둘도 아니라는 불이불이(不一不異)”이다. 아인슈타인은 “거품과 파도와 같이 물로 된 것들은 바닷물(One)과 조금도 다르지 않지만 동일한 것이 아닌 것과 같이 모든 종교, 예술, 과학은 한(One) 나무에서 뻗은 가지들이다”(막 12:32)고 하였다. 민희식은 그의 ‘법화경과 신약성서’에서 ‘신약성서는 법화경과 유사하다’고, 아치볼드 스코트 목사는 ‘성경과 불경의 내용 사이에 존재하는 많은 일치점’에 관해 언급하였다. 따라서 종교들이 서로가 적대감을 가지는 것은 그들 속에 진리가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