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고 하였다.
일상적 삶인 수건(ego)이 사라진, ‘진리의 부활’은 우리가 본래 모습인 그리스도(true Self)로 변화하는 거듭남(One, 요 3:3)이다. 즉 회개(깨달음)를 통하여 일시적인 시공간과 망상의 이원성(ego)을 십자가에 못 박고, 궁극적으로 “神과 하나”(One, 요 17:21)되어 일정한 법칙을 초월하는 새로운 탄생이다. 이러한 삶(true Self)은 단지 미래가 아닌 시공간을 초월한 현재 즉 바로 ‘지금 여기’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하지만 너희는 나(true Self)를 보리니”(요 14:19)라고 말씀하셨다.
‘영의 눈’이 열리는 하나님의 자리는 내면에 순수하고 온전한 진리가 드러나 그리스도와 똑같이 神人合一의 일원성이 이루어지는 神의 경지이다(마 5:48). 이와 같이 ‘神과 일체가 된 자’는 모든 사물과 조화를 이루어 형통하지 않을 수 없으며(마 6:33), “하나님의 눈, 마음의 눈”(엡 1:18)으로 이 우주에 충만한 ‘영원한 빛’*(神性)의 신비로움을 체험하게 된다. 프란시스는 나무들에게 “자매들이여 잘 있었나?”라고 말하였으며, 이와 같이 모든 허상은 사라지고 세상은 神性만이 가득하게 된다(草木國土 悉皆成佛, 열반경).
스스로 수행을 통하여 청정한 내면의 진리(生命)를 자각하면 병뿐만 아니라 선악, 손익, 행복과 불행 등의 이원성에서 자유롭다(요 8:32). 인간은 생명(神性)을 자각한 ‘참된 인간’(true Self)과 생명이 없는 ‘허망된 인간’(ego)의 두 상(相)이 있다. 현재의 우리는 금광(金鑛, One)의 상태로서 그 안에 망상 번뇌라는 불순물이 많이 들어 있기에 부처님(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거나 염불을 통하여 장애물을 제거할 수 있다(원각경).
* ‘영원한 빛’(神性)은 일체존재의 근본 요소인 양자, 중성자 등의 소립자가 우주에 충만한 장(場) 에너지인 光明의 파동으로부터 인연에 따라 이루어진 입자(粒子)임을 증명함으로써 설명되어진다(양자역학). 물질은 그대로 光明의 형상화인 텅 빈 空(sunya)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며, 에너지의 진동으로 에너지가 빠른 속도로 회전할 때 그 에너지는 물질처럼 보인다. 무한한 것이 진동할 때, 세상은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며, 또한 무한한 것이 진동하지 않을 때, 세상은 잠겨 있는 듯 보인다. 즉 횃불이 빠르게 회전하면 그것은 불의 원처럼 나타나며, 가만히 있으면 불의 원은 소멸된다. 이것을 깨달을 때 모든 갈망과 고뇌는 소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