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말씀하셨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면서 곧(immediately) 새 포도주를 갈망하는 사람은 없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가죽부대를 터뜨리게 되리라. 묵은 포도주를 새 가죽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상할 것임이라. 낡은 천 조각으로 새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그렇게 하면 그것이 새 옷을 찢으리라”(도마복음 47:3).


   선택은 노예 상태를 벗어날 수 없으므로 무 선택으로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것 즉 “진리는 오직 하나(One)”라는 것이다. “창조자와 피조물”, “너와 나” 등을 나누는 “이원론적인 것”(ego)은 나누어 질 수 없는 不可分인 “자타일체(自他一切)의 진리”(One)가 될 수 없다. 따라서 “미움과 사랑, 행복과 불행”(ego)등의 분별만 없으면 不二의 진리가 된다.


   대립되는 두 가지에서 선택을 한다면 전체성(One)을 상실한다. 이러한 하나(One)의 진리는 다양성을 포함하는 전체(All)이며, 옛것과 새것, 고(苦)와 락(樂)은 본질적으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서로가 상보(相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의 황홀한 힘과 명상으로 증애(憎愛), 득실(得失) 등의 이원성을 초월하면, 저절로 “하나의 진리”(요 17:21, One)를 통한 영원한 즐거움이 자신의 존재 전체에 밀려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現法樂住).


   


  창조자와 피조물: 오쇼(Osho)는 “디오니시우스(Dionysius) 신비신학”에서 하나님은 창조자가 아니라 창조성이고, 순수 에너지이며, 현존(現存)이라 주장한다. 아인슈타인(Einstein)은 地水火風空으로 이루어진 우주를 “하나(One)의 생명”으로 보는 것을 통일장 원리(統一場 原理)라고 하였다.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하나님은 “존재 자체, 존재의 힘, 존재의 바탕”이라고 하여 통일장(統一場)과 비슷한 "하나(One)"를 주장을 하였다(롬 11:36, 갈 3:20).  이러한 주장들은 주객(主客)으로 나누어 질 수 없으며, 또한 타자(他者)가 될 수 없는 하나(One)인 하나님과 창조론의 문제점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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