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한 道는 어렵지 않으니 다만 가려서 선택하지만 말라”


   우리는 결코 어렵지 않은 "하나(One)인 道"*를 “이것이냐 저것이냐”(ego)의 흑백논리(黑白論理)로 분별하고 집착함으로써 자꾸만 헤아린다는 것이다. 간택(揀擇)이란 취하고, 버리는 것을 말함이니, 취하고, 버리는 마음이 있으면 “영원한 道”(One)는 양변(兩邊)에 떨어져 마침내 “中道의 바른 견해”(One)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서 “이것이냐 저것이냐”로 간택(揀擇)하는 마음을 버릴 때 “하나(One)인 진리”**가 된다(入不二法門).


   일체 삼라만상(森羅萬象) 모두가 변해가는 과정에 있을 뿐 고정된 실체가 없으며(諸行無常, 諸法無我), 실체가 없는 그림자를 두고 “옳다 그르다고 분별하는 것”(ego)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러한 “有爲的인 분별”(ego)을 버리고, 공중의 새와 같이 無爲的인 마음으로 흐름과 하나(One)가 되어야 한다(마 6:26). 따라서 “성자(聖者)들은 개념(ego)을 세워서 취하고, 버리지 않는 무위법(無爲法)으로서 범부(凡夫)들과 차별이 되는 것이다”(金剛經).   


  *현대 물리학은 우주는 물리적 대상들의 집합으로서가 아니라 통일된 하나(One)의 여러 가지의 부분들 사이에 있는 복잡한 관계의 망(網)임을 증명하였다. 즉 “모든 사물과 사건들이 상호 연결되어 있는 불가분(不可分)의 우주”(道: One)는 끊임없이 운동과 활동 즉 에너지의 지속적인 조화로운 무도(舞蹈)라는 것이다. "하나(One)인 道"의 관점에서 볼 때 목적이란 불합리한 것이며, 모든 것은 우주적 유희(遊戱)라는 것이다.


  ** 종교 신비주의자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하나(One)인 진리" 즉 "보편적 진리"인  “우주의 근본생명”(One)을 “하나님(神性), 예수 그리스도, 부처(佛性), 空, 無, 道, 브라만(Brahman) 등으로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