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친구가 있습니다.
내 인생에서 단 한명을 꼽으라면 난 그애를 꼽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늘 함께 했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만난후 우리는 주말이면 그녀의 집에서 잠을 자고, 함께 교회에서 살았더랬습니다.
엄격하시던 부모님도 내가 그녀의 집에서 잠을 자는것은 항상 허락을 하셨습니다.
그녀의 덕이 컸습니다.
그 마을에서 그녀의 인기는 컸습니다.
모든 부모님들이 그녀를 좋아하셨습니다.
우리 부모님도 예외는 아니었나 봅니다.
겨울.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나는 교회를 더 자주 나가게 되었습니다.
유난히 앞니가 빛나던 전도사님(지금은 강도사님이시고, 그 이는 어느새 하얀이로 다시 바뀌어있습니다. 그리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셨고....), 언니들... 동생들.. 우리는 방학동안 교회에서 살았습니다.
밥도 해먹고, 라면도 삶아 먹고, 베드민턴도 치고, 전도사님을 꼬셔서 놀러도 가곤하였습니다. 힘들게 공부하시던 전도사님께서 장학금 받으셨다고 통닭을 사주시면 저는 제일 기뻤습니다. 그러던 어느때 부터............
나는 전도사님을 짝사랑하게 되었더랬습니다.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이었는데, 얼마나 가슴 설레던지.....편지도 썼었더랬죠.
그분의 차에 꽂아 두고 그분이 읽으신줄 알고 얼굴도 못보고.... 성경공부시간에 부끄러워서 얼굴도 못들고....... 그러다가 그녀와 밤을 새면서 나는 그 사실을 털어놓았었습니다.
아니! 그녀도 전도사님을 좋아하고 있었당........
우린 넘 통했습니다.
영화광이었던 나는 그녀와 영화를 보고 비평도 하고, 책을 읽고 비평도 하고, 하이킹도 자주 갔었습니다. 둑길을 걷길 좋아하여서 저녁이 되면 같이 산책도 가곤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조금씩 다르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운동을 많이 좋아했고, 축구하러 학교에 가면 그녀는 집에서 책을 보거나 영화를 봤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피아노를 치고 함께 찬양을 하던 일은 우리에게 변함없는 기쁨이었습니다.
함께 고등학교를 갔고, 토요일이면 시외버스를 타고 다시 시골로 와서 교회를 섬기고, 주일 느즈막하게 시간이 되면 다시 마산과 창원으로 가기를 3년.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안에서 자랐습니다.
우리의 우정도 ...
우리는 한동안 말도 하지 않고 지낸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녀가 아파서 날 찾는 바람에 다시 우리는 말을 하게 되었었지만말이죠...
그 친구가 지금 보고 싶군요.
핏자를 먹든, 통닭을 먹든 우리는 언제나 누가 돈을 낼까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
누가 더 많이 먹는지도 상관없고, 음식을 남기지 않도록 힘써 먹었는데...
그 친구가 참 멀리 있네요.
나의 거친 사투리에 늘 웃고, 나무토막이라고 비웃고, 새우눈이라 놀리고, 함께 있으면 아무도 못 감당하던.... 목사님께서도 우리의 우정이 변치 말기를 강대상에서 말씀하시던..
우리가 심하게 다투었을때 사랑하는 언니는 이런 선물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네게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것으로 감사해라"
참 좋은  선물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어도 우리는 여전히 친구입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 속에서 또다른 우정을 쌓더래도 우리의 우정은 여전히 우리의 가슴에 남아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