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불이 불이심신(信心不二 不二心信): “믿는 마음은 둘이 아니고, 둘 아님이 믿는 마음이다.”

 

  “둘 아닌 믿음”(信心)이란 생각을 일으키는 자와 그 대상이 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세계이다. 不二인 전체의 진리를 믿는 믿음은 “마음의 눈”(佛眼)을 뜨는 생생한 자기 체험의 사건이다(信·解·悟·證). “ego적인 내가 없음”(無我)을 깨달 후 즉 가리고 있는 번뇌의 어둠을 제거하고 광명의 “존재 자체인 佛性(true Self)과 하나”(One)가 되는 경지이다. 그러므로 영원한“佛性과 하나”(One)가 되는 순수한 깨달음이 신심(信心)이라고 할 수 있다.

 

  “둘 아님”인 신심(信心)에 대하여 “화엄경(華嚴經)”에서는 “신심(信心)은 道의 근본이요 공덕의 어머니라, 일체의 선한 法을 길러내느니라”(信爲道元功德母 長養一切諸善法)고 하였다. “色이 空이고, 空이 色이다”(色卽是空 空卽是色), “하나가 전체요, 전체가 하나이다”, “있음(有)이 없음(無)이요, 없음(無)이 있음(有)이다”(中道) 등은 깨달음을 통한 절대 평등한 “둘이 아닌”(不二) 신심(信心)의 세계이며, “부처님의 마음”을 말하고 있다.

 

 

 

   色이 空이고, 空이 色이다”(色卽是空 空卽是色):  “물질적인 세계”(色)와 평등 무차별한 공(空)의 세계가 다르지 않음을 뜻하며, 물질이 곧 에너지요, 에너지가 곧 물질이라는 것이다. 현대 물리학의 장(場) 이론은 물질과 빈 공간 사이의 구별을 버리게 하였다. 진공이란 완전히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무수한 입자들을 함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 신학은 순수 생명 에너지가 바로 神性(佛性: 그리스도)이라고 한다.

 

  中道: 中道의 융통(融通)하는 세계는 있음(有)도 아니고 없음(無)도 아닌 비유비무(非有非無)이며, 그리고 거기에서 다시 있음(有)와 없음(無)가 살아나는 것이다(亦有亦無). 곧 3차원의 상대적인 有와 無는 완전히 없어지고 4차원에 가서 서로 통하는 有無가 새로이 생기며, 있는 것이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곧 있는 것이다(有卽是無, 無卽是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