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신다”(엡 4:6)고 하였다.

 

  하나님은 “궁극적인 보편적 실재”(갈 3:20) 즉 유기적(有機的)인 전체(All)를 의미한다. 또한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스스로 있는 자”(I am that I am. 출 3:14)로써 인간의 유한한 사고의 범주로서 표현될 수 없다. 즉 어렵다거나(難) 쉽다(易)고 분별할 수 없는 비이원론적(非二元論的)이며, 편재(遍在)하는 神이므로(고전 15:28),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 inas)는 “하나님이 아닌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막 12:32)고 하였다.

 

  “하나님과 하나 됨”(One)은 모든 분별의 철폐, 대립과 차이의 용해라 할 수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나왔으므로”(요 1:3) 인도의 상카라(Shankara)는 “神은 존재하며 세상(물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따라서 충만한 존재로부터 나온 피조물의 허무함의 그림자를 깨닫고 나면, 전체(All)인 하나님만 존재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모든 종교가 만나는 한 지점은 神이 곧 모든 것이고 모든 것이 곧 神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對象)으로서의 神이 아니다(無對光神). 근원이며, 광대무변(廣大無邊)한 하나님의 바깥에서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고, 모든 것이 “하나님과 하나”(One)가 되어 있는 전체(All)인 것이다. 그러므로 “주객(主客)으로 나누어 질 수 없는”(不可分) 하나님은 인간을 대상으로 징벌한다거나, 종말에 심판하는 神이 아니다. 다만 인간은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는 진리”(갈 6:7, 種豆得豆, 因果應報)안에 있다.

 

  구약의 여호와는 현상계를 벗어난 이원론적(二元論的) 초월신(超越神)인 창조주이지만, 신약의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는 하나님”(마 5:45)과 과정신학(過程神學), 아시아신학, 道의 신학은 쉬움(易)과 어려움(難)이 없는 비이원론적(非二元論的) 신관(神觀)이다. 또한 불교의 “천지우주가 바로 부처”(佛身充滿於法界)요, “부처는 바로 우주를 몸으로 한다”(十方如來是法界身)는 부처(佛性)와 노장(老莊)사상의 영원한 道도 不二의 진리이다.

 

 

God is One and there is no other but him(막 12:32):  불변하는 영원한 하나님(神性: 佛性)외의 “모든 존재들은 마치 꿈,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갯불과 같이”(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金剛經) 계속하여 변화하는 일시적이라는 것이 현대 물리학에서 증명되었다. 즉 불가분(不可分)의 전체이며, 그 안에서 모든 형상들이 유동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주 안에는 어떤 고정된 실체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