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마 5:45)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악인과 선인에 대한 이원적(二元的) 분별을 초월한 절대 평등하다는 것이며, “나누어 질 수 없는”(不可分) “진리는 하나(One without second)”라는 것이다. 즉 “형상있는 우주 만유의 모든 현상은 영원한 실재가 아닌”(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 “헛되고 헛된 것”(전 1:2)이며, 오직 “불가분(不可分)의 전체인 생명”(One)만이 존재한다는 것이 “현대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었다.
바울은 “종말의 때에는 그리스도에 의하여 하나님에게 적대하는 모든 권세와 능력이 멸하게 된다”고 하였다(고전 15:24). 그러나 하나(One)인 절대 평등한 진리의 세계에서는 모든 이원성(二元性)의 “창조주와 피조물”, 선과 악, 생(生)과 사(死), 천국과 지옥에 관계되는 실존적 갈등이 모두 소멸된다.
예수님은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눅 6:21)라고 하나(One)의 진리를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이 모든 사물을 분별하지 않고 하나(One)인 진리의 눈으로 “보는 자”(true Self, 눅 10:23) 즉 “영적으로 거듭난 자”는 지금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것이다(요 3:3). 하나로 되돌아 갈 때”(一切卽一), “황금조차 그것의 가치를 잃는다. 그러나 “하나가 일체로 되돌아 갈 때”(一卽一切), 조약돌조차 아름답게 빛난다”.
진리는 하나(One without second): 신비가들은 우주에 충만한 “하나(One)인 진리”를 하나님, 神性,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나라, 부처(佛), 佛性, 열반(Nirvana), 로고스(Logos), 모크샤(Moksha), 一者 또는 道라고 부른다. 이러한 不二의 진리에 대한 無知가 이 세상에 많은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현대 과학적으로 증명: 고전(古典) 물리학에서는 자연계의 질량과 에너지를 각각 분리해 놓고 보았지만, 아인슈타인(Einstein)의 상대성이론의 등가원리(等價原理)에서는 질량은 단지 에너지의 어떤 형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정지해 있는 물체라 할지라도 그 질량 속에 에너지가 담겨져 있으며, 이 둘 사이의 관계는 E=mc²에 의해 주어진다. 그러므로 전 우주는 따로 떼어질 수 없는 에너지 모형들의 역동적인 그물(網)로서 나타난다.
창조주와 피조물: 오쇼(Osho)는 “디오니시우스(Dionysius) 신비신학”에서 하나님은 창조자가 아니며 세상은 피조물도 아니다. 즉 하나(One)이며, 창조성의 한 흐름으로써 이 존재 전체는 강과 같은 창조적인 에너지라고 주장한다. 즉 존재 전체는 하나의 유기적(有機的)인 일체성(一切性)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 진리란?
한 마디로 진리에는 선善과 악惡의 분별分別이
없다.
하나님은 햇빛과 단비를 차별 없이 내리시는
하나의 진리라는 것. 하나인 진리를 까닫지 못
하고 분별하는 그 마음이 지옥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황금과 돌덩이의 근본은 하나인데
금은 소중하고 돌은 하찮은 것으로 취급되는
것도 인간의 욕심에 의한 분별심 때문이다.
만약 황금이 돌처럼 여기 저기 굴러다니고
돌이 황금처럼 희소稀少하다면 인간은 돌을
위해 목숨을 걸지 않겠는가.
결국 창조주와 피조물도 또한 분별심分別心의
허망한 결과일 뿐 그 본질을 들여다 보면 하나
서로 상즉관계(創造卽被造, 被造卽創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