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큰 것이 작은 것과 같으니, 그 가장자리를 보지 못한다.”

  지극히 크다는 것은 생각이 끊어진 경지를 나타내기에, 그 가장자리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무아(無我)의 절대 경지에서는 더 이상의 테두리나 표면의 한계가 없다. 실상(實相)이 드러나면 어떤 경계를 만나더라도 전혀 다른 일이 없이 전부 둘 아닌 不二의 세계인 것이다. 즉 지극히 커도 작은 것과 동일하여, 가도 없고 밑도 없고 끝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진리(One)를 위하여 ego적인 분별 시비로서 경계를 만드는 망상을 버려야 한다.

 

 

  예수님은 비유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눅 8:4-8)

 

  예수님은 진리인 씨가 좋은 땅인 “영적인 자”(One)에게 들아가면 뜻을 찾아내지만 그러나 ego적인 분별 시비하는 자에게는 근본인 영원한 진리를 잃는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전체인 不二의 진리와 하나(One)되기 위하여 여러 가지의 생각, 철학, 판단, 분별 시비를 어떻게 떨쳐 버릴 수 있는지 고민하여야 한다. 이원성(二元性)인 ego의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의 본질은 대립물을 가져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주적이며, 보편적인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나(I AM)는 알파와 오메가라”(계 1:8)라 하심으로 생각에 의한 이원성(二元性)인 것을 비이원(非二元) 즉 일원론(一元論)적인 하나(One)의 본래모습임을 강조하셨다. 힌두교의 경전인 우파니샤드에서도 우주의 보편적인 브라흐만(Brahman)을 만물이 근원으로부터 나왔다가 근원으로 돌아가는 만물의 알파와 오메가로 간주한다.

 

 

  “그의 제자들이 예수께 이르되 이스라엘에서 스물네 선지자가 말하였거니와, 저들이 모두 주님에 대해 말했나이다. 예수께서 저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 눈앞에 있는 살아 있는 사람은 무시하고 죽은 자들에 대해 말하는 도다”(도마복음 52).

 

  예수님은 창조자와 피조물, 생사(生死), 영육(靈肉), 선악(善惡)을 둘로 나누는 분별의 ego적 이원성(二元性)을 時空을 초월하는 진리의 개념을 벗어난 부질없는 것으로 여긴다. 즉 전체(All)이며 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진리인 “살아있는 자”(true Self)를 무시하고 죽은 자들에 대하여 말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살아있는 자”는 인간 안에 존재하는 시공(時空)을 초월한 실상(true Self)이며, “영원한 현재로써 내면의 그리스도”(요 8:58)이다.

  이 진리를 인간 스스로가 깨달을 때 구원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만일 그것을 무시할 때 그는 죽은 것들인 물질적 세상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요 14:9)고 하신 예수님은 時空의 한계를 벗어난 가장자리를 볼 수 없는 신비한 하나(One)의 진리를 전파하셨다. 이러한 영적 진리는 구약 선지자들의 유한 상대적인 말들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