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나아간 궁극에서는 일정한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깨달음(無我)에 도달한 뒤에는 일정한 규칙이 없고, 세간의 도덕이나 윤리로써 그것을 가늠할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즉 어디에도 분별 시비하여 머물지 않고 어떤 격식도 만들지 않는 不二의 진리를 지키라는 것이다. 참새 다리는 짧아서 좋고, 학의 다리는 길어서 좋은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모양을 떠나서 보면 그대로 완전한 평등이요, 차이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마 13:45-46)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내면에 있는 “不二의 진리”(진주)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잘 나타내고 있다. 깨달음으로 분별 시비적인 ego가 소멸되고, 궁극적인 진리를 찾으므로 하나(One)가 되면 어떠한 정해진 규칙과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자유로운 세계가 되는 것이다(요 8:32). 즉 마음을 비우는 영적 가난의 절대 평등한 이 세계에서는 어떠한 분별 시비나 집착이 있을 수 없는 순수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상태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말씀하셨다. “당신은 언제 우리에게 나타나시고, 우리는 언제 당신을 뵙겠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어린 아이들처럼 부끄럼 없이 옷을 벗어 그 옷을 발아래 던지고 그것을 발로 짓밟을 때, 너희는 살아 있는 자의 아들을 보리라. 그때 너희는 두려워하지 않게 되리라”(도마복음 37).

 

  진리의 실상은 숨겨져 있지 않으며, 다만 그대 스스로가 닫고 있는 것이다. 진리는 모든 곳, 모든 순간에 충만하게 드러나 있다.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영원한 진리는 그 자체의 본성상 숨겨질 수가 없다.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와 같은 "거짓된 현상"(ego)만이 진리(true Self)를 숨기고 있는 것이다.

  순진무구(純眞無垢)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부끄럼 없이 ego(ahamkara)의 옷을 벗을 때 “살아있는 자의 아들”(진리)이 될 것이다. 즉 “내면의 변화”(metanoia)를 통하여 고통을 일으키는 이분성의 “겉 사람”(ego)이 모두 사라졌을 때 일정한 법칙이 존재하지 않고 분별 시비와 두려움이 없는 “不二의 진리”(true Self)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