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같음은 그 바탕은 현묘(玄妙)하니, 홀로 우뚝서서 차별 인연을 잊는다.”

 

  한결같음은 둘 없이 하나(One)이니 분별 시비할 수가 없고, 분별 시비할 수 없으니 현묘(玄妙)한 것이다. 즉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없고, 과거인지 현재인지 미래인지를 구별할 없어 모든 차별 인연이 완전히 끊어지니 한결같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마 13:17)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不二의 진리는 분별 시비할 수 없는 한결같으며, 현묘(玄妙)한 것이기 때문에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보지 못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은밀히(privately)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눅 10:23, Blessed are the eyes that sees what you see.)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에게 눈으로 보지도 못했고, 귀로 들어보지도 못했고, 손으로 만져보지도 못했고,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을 주겠노라”(도마복음 17).

 

   예수님이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을 주겠노라”고 한 것은 “홀로된 자”(monakos)가 선(禪)과 같은 방법인 직관으로 체험하는 내면에 있는 신성(神性: true Self)이다. 이 신성(神性: true Self)은 엑카르트(Eckhart)나 성 프란시스(Saint Francis)와 같은 신비주의자들이 체험한 不二의 진리이다.

  밖에 있는 것 즉 모든 분별 시비를 버리고 하나(One)의 텅 빈 순수존재가 되었을 때 오직 가장 깊은 내면의 세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세계인 것이다. 이러한 진리는 없어서 보지 못한 것이 아니다. 없어서 듣지 못한 것이 아니다. 없어서 만지지 못한 것이 아니다. 없어서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