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아 버리면 자연히 본래로 되어, 본바탕에는 가거나 머무름이 없다.”

 

  내가 망상의 생각에 의하여 업(業)을 만들때 그 업(業)이 오히려 주인이 되어 나를 이끌어 가고 있으며, 이러한 나의 생각에 의하여 내가 속고 있는 것이다. 홀연히 집착을 놓아 버리면 모두가 자연히 현전하며, 본체(不二)는 본래 가는 것도 머무는 것도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1:39),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마 6:28)고 말씀하셨다.

 

 하나(one)의 생명, 하나(one)의 진리를 위하여 자기의 분별하는 그림자와 같은 목숨(ego)를 잃는 자는 영원한 전체(不二)인 참자기(true Self)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막힘이 없는 원융무애(圓融無碍)한 “실상(實相)의 세계”(whole)는 가거나 머무름의 차별이 없기 때문에 망상과 집착하는 생각만 완전히 놓아버리면 자연히 성취되지 않을 수 없다. 들의 백합화를 보고 모자람이 없는 자연의 본체를 깨달을 때 염려는 사라지게 된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나라는 곡식이 가득한 항아리(인간의 육)를 이고 가는 여인(인간의 영혼)과 같으니, 저가 먼 길을 가는 동안 항아리 손잡이가 깨어져 곡식이 흘러내렸으되 저는 이를 알지 못하니라. 저가 집에 이르러 항아리를 내려놓으매 그것이 비었음을 알더라”(도마북음 97)고 말씀하셨다.

 

  여인은 손잡이가 깨져, 나중에 집에 이르러 항아리가 비었음을 발견한 것은 분별적인 ego를 소멸시켜 전체(不二)인 참자기(true Self)가 되는 “자기를 비우는 것”(빌 2:7)이다.즉 ego적 인생은 무의미한 가상(假相)임을 깨닫고, 영원한 “나눌 수 없는 빛”(true Self)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