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상대적인 두 견해는, 오직 헤아려 보기 때문에 생긴다.”

 

 본래 진리에는 양변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마음으로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는 분별 시비”(짐작)로 따진다는 것이다. 어림잡아 헤아리는 짐작의 버릇을 버리지 못하면 일체 둘이 아닌 不二의 진리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너와 나, 중생과 부처 등 두 가지의 상대성인 이변(二邊)의 취사심(取捨心)만 버리면 전체가 현전(現前)하여 不二의 진리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마 12:28-29)

 

  우리는 좋은 것과 나쁜 것 등을 분별 시비하는 어둠(ego)을 쫓아내는 성령의 체험으로 “不二의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지금 여기 임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즉 너와 나, 중생과 부처 등 이변(二邊)의 취사심을 일으키는 “강한 자”(ego)를 결박한 후에 “不二의 진리”(神性)를 찾아야 한다. 우리는 헤아려 보는 모든 상대적인 두 견해를 초월한 하나님(神性: true Self)을 향한 믿음과 더불어 편재(遍在)하시는 “하나님과 하나”(One)됨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가 그리한 것과 같이 자기 아비와 자기 어미를 미워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느니라. 누구든지 내가 그리한 것과 같이 자기 아비와 자기 어미를 사랑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나의 어머니는 나에게 죽음을 주었고, 나의 참 어머니는 나에게 생명을 주었느니라”(도마복음 101)

 

  비(非) 이분법적인 영적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분법적인 육적 가족으로부터의 초연이 필요하며, 보편적 하나(One)의 진리는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었다는 것이다. 즉 모든 상대적인 두 견해를 초월할 수 있는 것은 헤아림이 없는 不二의 진리인 참 어머니로 부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