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말씀하셨다. “우물가에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물 안에는 아무도 없다”(도마복음 74).

 

  많은 사람들이 우물(진리)을 쳐다보지만 막상 우물 안으로 들어가 분별(ego)이 사라진 하나(One)의 진리를 체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예수의 실망은 사람들이 이원성의 꿈”(의식의 종교)에 사로잡혀 우물가에만 머물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내면의 눈을 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거짓된 ego로부터 본래의 참나(, One)를 회복한 극히 소수의 사람만 우물(神性)안에 머물 수 있다(바가바드 기따). 눈을 뜨는 방법론으로 주희는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면 초월하여 하나님(神性)을 대할 수 있다”(경재잠)고 하였다.


 예수가 원수를 사랑하라”(5:44)는 것은 진리(One)의 말씀으로 남의 고통이 나의 고통”(自他一如)임을 깨달아 을 구제하는 자가 되어야 하며, 원수도 상호보완적이라는 뜻이다. 자신이 온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하나(One)의 진리를 깨달은 성인(聖人)들은 인류가 괴로움을 당하는 것은 오직 나의 죄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하늘에 있는 ”(他者)이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 벌()을 준다는 구약의 이원적인 주장은 하나(One)의 생명 안에서 모든 현상을 인과의 법칙(6:7)*인 원인과 결과로 보는 진리와는 양립하기 어렵다.

 


* 인과의 법칙인 업(, karma)의 법칙은 의 상벌(賞罰)이라고 할 수 있다(5:26, 6:7). 만일 현재의 기독교 교리대로 우리가 저 멀리에 있는 타자(他者)인 인격으로부터 상벌(賞罰)을 받는다고 하면 이 은 나누어 질 수 없는 하나(One)의 궁극적 진리가 될 수 없다. 마음은 자신이 과거에 한 생각과 행동에 따라 천국의 의식과 지옥의 의식상태에 있을 수 있다. 심리학자들은 우연한 사건이라는 것들의 대부분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잠재의식의 표출이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가 경험하는 고통과 불행은 과거의 업보(業報)가 사라지는 정화 과정이며, 사물의 진정한 상태를 보도록 가르치는 영적 성장의 은총일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