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밀하고 거칠음을 보지 못하거니, 어찌 치우침이 있겠는가?”

 

  누구든지 세밀함과 거칠음에 기우는 편당(偏黨)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하나의 空이 양단과 같아서 삼라만상을 다 포함한다”는 도리를 절대로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과 이것 아닌 것을 나누는 분별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치우침이 있겠는가?

 

  예수님은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이우심이니라”(마 5:45)고 말씀하셨다.

 

  아침마다 떠오르는 해는 그 빛을 누구에게나 똑같이 전체적으로 비추며, 크다 작다, 좋다 나쁘다 하는 시비 분별심이 전혀 없는 空이다. 해는 일체 모든 생명에게 평등으로 대하고 있으며, 평등 그 자체인 두루 통하는 하나(one)이다. 따라서 시공을 벗어난  "不二의 진리"(whole)안에서는 선과 악을 구분하는 최후 종말론이 성립되어 질 수 없다. 

 

  예수님은 “너희가 둘을 하나로 만들면 너희는 人子가 되리니, 너희가 ‘산아, 움직여라’고 하면 산이 움직이리라”(도마복음 106)고 말씀하셨다.

 

  “둘을 하나로 만든다”는 것은 이분법적인 ego가 소멸되고 전체인 진리(true Self)가 드러나며, 영적 비이분법(不二)의 깨달을 얻은 자는 두루 통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도마의 “不二(whole)의 진리”에 대한 깨달음과 다르게 성경에서 마태(17:20)와 마가(11:23)는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라는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