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빨리 상응하고자 한다면, 오직 둘 아님만을 말하라.”

 

  진리와 하나되어 피차 막힘없이 통하고자 한다면 “不二의 자리”(절대세계)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不二의 진리는 취하고(取) 버리는(捨) 등 남이 곧 나이고 내가 바로 남이 되는 하나인데, 둘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 중생의 마음이며, 둘로 분별 시비하는 것은 착각이며, 망상(妄想)이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제 목숨을 얻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목숨을 얻으리라”(마 10:39)고 말씀하셨다.

 

  不二의 진리를 위하여 취하고 버리는 이원성(二元性)의 헛된 겉사람(ego)를 버리면 피차 막힘없이 통하는 분별 시비가 사라진 “영원한 생명”(true Self)을 얻게 되는 것이다. 즉 ego가 사라졌을 때 그리스도의 충만함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이렇게 영원한 생명과 하나(One)가 되면 피차 막힘없이 통하게 되어 남이 곧 나이고 내가 바로 남이 되는 오묘한 세계의 경지가 된다. 즉 하나(One)인 “不二의 자리”야말로 실재이고 진리인 것이다.

 

  예수님은 “내게로 오너라,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 그리하면 너희는 쉼을 찾으리라”(도마복음 90)고 말씀하셨다.

 

  성경에서 마태(11:28-30)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일반적인 해석은 죄와 죽음의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죄인들을 불러 미래에 믿음으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하여져 있지만”(Your kingdom come. 마 6:10) 영적 어둠 즉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여 보지 못하고 있다”(마 5:8). 또한 마태는 “쉼을 얻으리니”라고 하였으나, 예수님은 “쉼을 찾으리라”고 함으로써 “쉼”인 영원한 내면의 神性(true Self)을 깨닫는 자가 누리는 영원한 축복을 강조한다.

  하모니를 뜻하는 멍에(yoke)와 合一을 뜻하는 요가(yoga)는 동일한 어원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예수님과 같이 “영원한 하모니와 평정(平靜)한 쉼”(true Self)을 찾고자 하는 자는 “예수님과 하나”(One)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절대세계인 “不二의 진리”(One)는 피차 막힘없이 통하는 원융무애(圓融無碍)한 경지이다.

  예수님의 “쉼을 위하여 내게로 오너라”는 것은 우리들을 종교, 교리 등을 비롯한 모든 고통을 일으키는 “이원성(二元性)의 멍에”(ego)와 욕망에서 벗어나 “전체인 하나”(true Self)가 됨으로써 자유롭게 하려는 것이다. 분별 망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시공(時空)을 초월한 不二의 진리와 더불어 “영원한 절대 행복”(makarios)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