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으로 헤아릴 곳 아니니, 의식과 감정으로 측량키 어렵다.”

 

  의식과 감정 그리고 생각으로는 “텅비어 스스로 비추는”(虛明自照) 근원의 세계를 헤아릴 수 없고, 다만 깨달음만으로 알 수가 있다. 삶과 죽음을 따로 보는 세계는 생각으로 설명할 수 있으나, 삶이 곧 죽음이요, 죽음이 곧 삶이라는 근원(本質)인 空의 세계는 의식과 감정을 초월하기에 생각으로 측량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요 10:1-6).

 

  민중들이 예수님의 말씀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은 不二의 진리는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으니 의식과 감정으로 측량키 어렵기 때문이다. 즉 時空을 초월하는 진리(One)는 깨달음의 체험을 한 사람 즉 "거듭난 자"(One)들만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체이며 무한한 경전의 진리를 유한 상대적인 사고(思考)로 해석하여 교리화 하거나 절대화하여 집착하는 독선의 죄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비교하여 내가 누구와 같은지 말해보아라.”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답하되, “당신은 의로운 사자와 같으시니이다.” 마태가 그에게 답하되, “당신은 지혜로운 철인과 같으시니이다.” 도마가 그에게 이르되, “선생님, 저의 입으로는 당신이 누구와 같은지 감히 말할 수가 없나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도마에게 이르시되, “나는 너의 선생이 아니라, 너는 내게서 솟아나는 생수를 마시고 취했구나”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예수께서 도마를 데리고 물러가셔서 그에게 세 가지 말씀을 하셨더라, 도마가 자기 친구들에게 돌아오자 저들이 저에게 물어, “예수님은 너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 도마가 이르되, “저가 내게 하신 말씀 중 하나라도 너희에게 말하면 너희는 돌을 들어 나를 칠 것이요, 그 돌에서 불이 나와 너희를 삼키리라”(도마복음 13).

 

  예수님은 도마가 영원한 내면의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과, 깊은 진리에 대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음을 알고 계셨다. 그러나 다른 제자들은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눈이 열리지 않았다. 진리이신 예수님은 베드로의 도덕성, 마태의 철학의 이론을 초월한다. 즉 이론으로 증명해야만 하는 가설이 아닌 인간의 언어와 생각을 초월하신 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