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부활의 확실성을 설명하면서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되리라”(고전 15:52)고 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위 구절을 이 땅에서 영과 육을 입고 살고 있는 성도들은 그가 살았든 혹은 죽었든 마지막 나팔소리에 변화되어 부활의 모습을 덧입을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활의 해석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時 공간을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 즉 "지금 여기의 내면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神性內在論)와는 연관성이 없기 때문에 육체의 부활은 영(靈)의 부활에 대한 상징이라 할 수 있지요.
장로님의 詩와 같이 진리안에서 새 생명의 싹이 돋아나는 부활은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이 지금 이 자리를 떠나 죽음 후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 진리 속에서 지금 이 자리에서 부활을 경험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 까요?
또한 ego의한 세속의 삶이 소멸되어 새사람(True Self)으로 스스로 부활한 자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나 절망감 그리고 육신의 죽음에 대한 공포까지도 모두 떨쳐버리고 자유로이 조화로 가득찬 행복된 하나님의 나라의 삶(영생)을 살아가는 자라 할 수 있지 않을 까요?
그러나 이러한 부활의 해석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時 공간을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 즉 "지금 여기의 내면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神性內在論)와는 연관성이 없기 때문에 육체의 부활은 영(靈)의 부활에 대한 상징이라 할 수 있지요.
장로님의 詩와 같이 진리안에서 새 생명의 싹이 돋아나는 부활은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이 지금 이 자리를 떠나 죽음 후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 진리 속에서 지금 이 자리에서 부활을 경험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 까요?
또한 ego의한 세속의 삶이 소멸되어 새사람(True Self)으로 스스로 부활한 자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나 절망감 그리고 육신의 죽음에 대한 공포까지도 모두 떨쳐버리고 자유로이 조화로 가득찬 행복된 하나님의 나라의 삶(영생)을 살아가는 자라 할 수 있지 않을 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