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空의 세계世界
글, 김 의 준 장로
공空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감쪽같이 삼켜버리는 블랙홀과 같은 것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요 존재의 근원이니
존재하는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산이 산이 아니요, 물이 물이 아닌
마음에 흔들리는 그림자일 뿐
공空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맨몸으로 에덴동산을 거니는 아담과 이브의 마음
단절과 차별과 집착을 넘어
진리 안에 내가, 내 안에 진리가 있어 자유로운
마침내 나도 사라지고 진리만 가득한 세계
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하고
그것이 아니면서 그것인
말이 필요 없음을 말하고자 말이 있는 세계
긍정肯定과 부정否定의 징검다리를 지나
진리의 강을 건너는 순례자巡禮者의 발걸음이라
공空은
지배하려는 욕심이 아니요 용납하는 여유
있음을 포기한 허무虛無가 아니요
자연自然에 충만한 진리眞理이니
유有와 무無가 등 돌리지 않고
선善과 악惡이 손잡고 노니는 정반합正反合의 세계
자기 비움 속에 다른 것을 수용하는 여유로움이요
자기 채움 위에 다른 것을 부요케 하는 사랑이니
색즉시공色卽是空과 공즉시색空卽是色을 넘나드는 신비神秘라
공空은
밑질 것도, 남을 것도,
애써 득실을 따지지 않는
말을 배우기 전의 어린아이 마음이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투명함이라
모든 것 안에 충만한 기쁨이요
모든 것을 초월한 무한함이니
공空은 죽어야 사는 진리의 변증辨證이라.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옛사람인 ego를 소멸시켜 빈 마음으로서 무아(無我)의 상태인 새사람(True Self)에 도달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러한 내세울 ego가 없다는 마음이 가난한자의 개념은 도가적(道家的)으로는 끝없이 드넓은 道의 경지를 체득한 후 고요한 경지에서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텅 빈(虛)마음이며, 이러한 마음이 구현된 “스스로 그러함”(自然)에 따르는 것이 무위(無爲)입니다. 또한 이러한 진리를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는 空으로서 표현되어지며, 이러한 자가 진정으로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에서 자유는 일체의 상(相)을 여윈 공(色卽是空), 그러면서도 동시에 일체의 상을 수용하는 공(空卽是色)의 지혜에서 오며, 일체의 相을 떠났기에 영안이 열린자에게는 무한한 자유가 있고, 일체의 相을 받아들이기에 한없는 자비가 있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일체의 분별과 집착을 떠난 신앙인의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것도 空이요, 무분별의 분별, 무집착의 집착인 자비를 가능하게 하는 것도 空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구 독일의 세계적인 영성 신학자인 엑카르트는 마음의 가난을 동양의 空사상과 비슷한 의미로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며(nichts willen), 아무것도 알지 않으며(nichts wissen),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nichts haben)이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그는 비단 세속적인 의지나 앎이나 소유뿐만 아니라 종교적·영적 의지나 앎이나 소유까지 버리는 철저한 초탈(空)을 말하고 있으니, 동서양 모든 곳에 "하나님의 신성이 분명히 보여 알게 하고 있습니다".(롬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