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줄넘기
글, 김 의 준 장로
배 불러 온 대로 낳고 본 자식새끼들
어느새 소만큼씩, 말만큼씩 자랐는데도
시집 장가 못 가고 있던 때
짚신도 제짝이 있다지만
숨이 막히고, 남몰래 괴로웠는데
하나, 둘 제짝 찾아 가고, 문득
온 집안이 허전하던 그 때가
그리도 행복했던 시절
오르기 힘든 곳에 절경絶景이 있듯이
괴로움과 즐거움은
새끼줄 양 끝에 매달려
빙빙 돌아가는 줄넘기 같은 것.
(어떤 할머니의 괴로움과 행복 고백
- 서울말 으뜸 사용자 선발대회에서)
할머니의 "괴로움과 즐거움은 새끼줄 양 끝에 매달려 빙빙 돌아가는 줄넘기 같은 것"이라는 고백은 영안이 열린 즉 道를 깨달은 경지가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老子는 궁극적 실재인 道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道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으니 만물은 음을 등지고 양을 안아 허무의 氣로써 조화를 이룬다(道生一, 二生三, 三生萬物, 萬物負陰而抱陽. 沖氣而爲和: 도덕경 42장).”
이와 같이 만물의 근원이며, 궁극적인 실재인 道는 원래 음양이 갈리기 전의 혼돈된 통일체인데, 그 뒤에 음양으로 나뉘고 음양의 두 氣가 서로 섞이고 충돌하여 조화를 이룬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괴로움과 즐거움의 모순 대립이라는 개념인 음양이 대립 전화(轉化)하는 것을 道라고 할 수 있습니다(一陰一陽之謂道).
우리도 이 할머니와 같이 영적 깨달음을 얻어 이분법적으로 구별하는 ego를 소멸시키고, 만물제동(萬物齊同)의 하나됨(True Self)인 "궁극적 실재와의 하나 됨의 경지"(요 17:21)를 이루어 선과 악,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어떠한 환경 특히 고통 속에서도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합시다. 즉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모든 물을 사양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바다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임으로 행복된 삶을 누려야 하지 않을 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