信仰이라는 이름의 생명체
글, 김 의준 장로
진리眞理의 씨앗 한 톨이
내 안에 떨어지던 날
작은 나비 한 마리가 옷섶에 날아와 앉듯이
그것을 느끼지 못하였네
신앙은 싹트고 자라나는 신비한 생명체
그 싹이 돋을 때, 괜히 가슴은 뛰고
그 온기에 젖어 마냥 행복하고
줄기를 밀어 올리며 스스로를 느낄 때
바람에 흔들리는 다른 것을 의식하게 되었네
내 안의 열매를 소망하는 떨리는 마음으로
다른 것의 열매를 생각하고
다른 것의 존재를 사랑하는 순간
모든 것이 하나라는 걸 알았네
처음 내 안에 떨어진 것은
다름 아닌 우주의 씨앗
마침내 모든 것을 그 안에 버리므로
오롯한 하나로 여물었네.
(James Fowler의 <신앙의 단계>를 읽고)
장로님의 詩에서 결론인 "오롯한 하나를 완성하였네"의 구절은 참으로 중요한 진리가 아닌가요?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구원이라는 말은 “내면의 변화”(metanoia)인 깨달음과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들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진리는 처음부터 하나님과 내가 하나였고, 지금도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아 옛 사람인 자아(ego)에서 조화를 이룬 새 사람인 참된 나(True Self)로 승화되는 내면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며, 예수님과 같이(요 10:30) 하나님과 하나됨(One)의 깨달음이라 봅니다.
따라서 구원은 우리가 궁극적 실재인 하나님과 하나 됨으로써 이미 구원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구원받은 자로서 기쁘고 감사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며, 이 세상의 천차만별을 분명히 보면서, 그러나 그 차별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 모두가 하나(One)인 경지에 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 까요?
이러한 "내면의 변화인 회개를 통하여 얻게 되는 paradise의 경지"(막 1:15)인 하나 됨(萬物與我爲一: One)에 대해서 老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상만물은 有에서 생겨나고 有는 無에서 생겨나고, 또한 돌아감이 궁극적 실재로서의 One인 道의 움직임이다(天下之物, 生於有, 有生於無, 反者道之動(도덕경 40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