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글을 통해서 이야기할 내용은 교회음악의 분류에서 영성부분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문화와 교회음악의 연관성을 설명 드린 저번주의 글과 연관성이 있습니다.

                        곧 교회음악은 문화와 음악의 상이함과 함께 여러 가지의 표현양식에 따른 음악의 속성을 존중해서 행해져야 한다는 말씀과 함께 교회음악이 문화에 속한 것이 아니며, 문화에 의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문화가 그 자체에 종교성을 나타내는 양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다고 저번 주에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그 지역과 상황에 맞는 문화는 그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의 종교성을 나타내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과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현실에서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문제점에 봉착하게 됩니다. 사실 교회음악이라 함은 어떠한 특정한 '교회 양식'을 지니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음악이 하나님께 향하고 있는 바른 영성을 지니고 있는지는 그 양식에 있다고 보기보다는 내용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관하여는 출애굽기 32장에 나와있는 금송아지와 성전에 안치된 '바다(놋대야)를 받치고 있는 놋으로 된 열 두 소'를 보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 소는 우상으로 한 소는 열두 지파의 상징과 함께 제사장들의 정결 의식을 감당하는 중요한 물건으로 사용된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거룩한 성막에 쓰일 물건들이 출애굽 이후에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성막을 지으라 명하심을 받을 때는 그 물건들이 애굽 사람들 것임을 알 수있습니다. 출 12:35-36에서 말씀하듯이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짓기 위해서 하나님께 헌납했던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실 등"(출 25:2)의 출처는 다름 아닌 애굽의 물건들이었습니다. 이 말씀들로 볼 때 하나님을 대적한 애굽나라의 물건이 하나님의 거룩한 장소에 놓여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실들은 우리로 하여금 문화에 대한 잘 못된 사고의 틀을 흔들어 줍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문화 명령의 거시적인 안목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창 1:28, 롬11:36)

                      인간은 문화를 향유하면서 살았지만 문화의 영향을 받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문화와 교회는 분리될 수 없는 관계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문화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문화를 이끄는 존재로써 기독교인의 임무는 과히 큰 일을 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음악을 표현해줄 문화에 대한 바른 인식은 어떠해야 하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문화는 그 주체인 인간이 그에게 문화 활동을 맡기신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따라 방향이 달라진다. 다른 말로 하자면 문화는 종교에 의해 그 방향성이 좌우된다. 문화의 영성은 본래 하나님이 인간에게 사명으로 주신 그 방향과 계획에 따라 나가는 것, 아니면 그것을 거부하고 자율적이고 인본주의적인 방향으로 나가는 것, 이 두 가지로 크게 구별할 수 있다."


                      그래서 로버트 웨버(Robert E. Webber)는 "소위 중립적인 문화 행위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라고 전제한 뒤 "인간의 문화 행위는 그가 가진 가치관(values)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가치관은 삶에 관한 종교적 확신(basic religious convictions)에서 유래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음악은 문화입니다. 그렇다면 음악 만들기에 있어서도 중립적인 위치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음악은 소리로 표현되고 이 소리는 인간의 내면적인 가치관을 나타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린 음악의 형식과 양식에 치중하기보다는 그 내용과 내면적 방향성에 관심을 갖고 영혼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점검의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본주의적이며, 우상을 숭배하는 음악은 그 목적과 대상이 허황된 것이기에 공허하며, 영적 타락의 소리이기에 음란하며 혼탁하고, 무질서한 형태로 소음을 자아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은 그 자체가 음악을 만드신 분을 찬양하는 소리로써 그 음악이 나타내는 대상과 목적이 분명하며, 인간의 내적 본질과 함께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게 됩니다.  음악은 하나님을 바르게 찬양할 때 비롯서 그 목적을 이루게 되고 인간들 또한 그 참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는 안정과 평안이 있어서 질서있게 표현되며, 거룩한 하나님의 속성에 따라서 거룩하고 순결하게 표현되어지는 소리입니다.

문화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인간의 종교적 믿음을 나타내는 방편으로 생각해 볼 때, 그를 표현하는 양식과 형식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면서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을 설명할 때  프란시스 쉐퍼(Francis A. Schaeffer 1912-1984)는 "경건한 혹은 불 경건한 양식같은 것이 없다고 해서 모든 다양한 양식들이 그 예술 작품 속에 담고 있는 메시지나 내용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함은 매우 잘못된 것이며 순진한 생각이다. 양식들 그 자체들은 어떤 세계관이나 메시지들을 위한 상징적인 체계나 매개체로서 발달되는 것이다."라는 말로 교훈 합니다.

                      교회음악에 있어서 소리로 표현할 때 필요한 음악적 양식과 형식에 절대적인 규칙은 없지만 문화 사명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공동체가 함께 할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메시지를 담아낼 음악양식을 만드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찬양을 드리는 자가 영성있는 찬양을 드리는 자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