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음악은 하나된 공동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공동체의 소리입니다.

             로버트 웨버(Robert E. Webber)는 교회음악의 목적 중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가 됨을 더욱 견고히 하는 것이라 하면서 초대교회 교부인 이그나티우스(Ignatius ?-115)의 망를 다음과 같이 인용합니다.
"바로 지금 이 곳에서 불려진 시편은 모든 목소리들이 함께 드린 완전한 하나의 찬송이었습니다. 젊은이와 노인들, 부자와 가난한 자, 여자와 남자, 노예와 자우인, 이 모든 사람들이 한 선율을 부른 것이었습니다. 사회적인 구별들이 여기에선 사라진 것입니다... 완전한 평등 속에서 그들의 표현으로 이 지상이 천상을 모방하는 하나의 찬양대가 됩니다."

             교회안에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린 흔히 듣는다. 하지만 우린 그렇게 살지 못하고 심지어 교회안에서 조차 불평등한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우린 주님이 핏값으로 사신 머리이신 예수그리스도안에서 모두 평등하고도 존귀한 하나인 공동체인 것이다. 교회음악은 바로 우리에게 이러한 공동체의 소리를...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공동체임을 확인시켜주고 모일때마다 인식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롬 15:6)의 말씀처럼 에버레트 피거슨(Everett Ferguson)은 비록 성이 다르고 연령이 다른 사람들 음성의 당양성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생성된 조화와 융합의 '한 목소리'는 기독교 초기만이 아니라 끝없이 변하지 않을 교회 공동체의 속서이라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워렌 위어스비(Warren W. Wiersbe)도 "음악은 교회 안에서 하나 됨(unity)을 표한하고 강화시켜 주는 매개체이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음악의 신미적인 부분을 강조한 나머지 좋은 연주를 지향하고 좋은 소리 곧 실력있는 연주자를 가장 최우선을 뽑습니다만, 교회음악은 남녀노소를 불문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소리로 가장 멋진 소리를 내어서 찬양하는 것이 바로 연합의 의미와 함께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매개체가 그 공동체성을 음악처럼 강화시키면서 타나내게하는 것이 있는지 생각해 보면 음악의 역할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는 축복이 큰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윌슨 딕슨(A. Wilson-Dickson)은 20세기 영국의 음악 비평가 휴고 코올(Hugo Cole, 1917-?)의 "여러 종류의 교파, 그들의 믿음에 따라 모인 회중들의 음악들에 있어... 매우 긴밀한 관계 속에 모호함이 없이 각각의 음악적 색깍을 세심히 표현하고 있다"란 말을 인용하면서 특히 요한 계시록에 나타난 '각 나라의 족속과 백성과 방언'의 모습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다양성을 인정하시고 자신에게 헌시한 그들의 언어와 문화안에서 기뻐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교회음악은 이렇게 성별과 나이 귀하고 천함, 부와 가난을 넘어선 그리스도의 공동체의 음악이며, 각 나라와 족속들 그리고 그들이 갖고 있는 문화적 특성과 사고 방식을 넘어선 그리스도의 공동체라는 일체감을 안겨주는 음악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음악은 어떠한 구별과 차별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 공동체로 말미암은 소리는 인간의 모든 다양함과 풍부함 속에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융합되는 찬양입니다. 이 찬양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인간에게 미쳐지는 감동의 순간이 되는 주안에서의 공동체를 마음으로부터 느끼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