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가 곧 모두요, 모두가 곧 하나이다.”

 

  하나는 작은 하나이며 일체는 커다란 전체(All)이다. 不二의 진리에서는 하나가 곧 많음이고 많음이 곧 하나로서 하나와 많음이 서로서로 통하여, 하나가 곧 전체(All)이고 전체(All)가 곧 하나라는 것이다. 이것은 양변(兩邊)을 모두 포용하고 양변(兩邊)을 초월하는 직관의 세계인 중도(中道)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 나와 세계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진실도 아니고 허깨비도 아니며,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는 언제나 “모든 것이 차별 없는 같은 자리”(One)인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요 13:20), 또한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 25:40-45)고 말씀하셨다.

 

  “不二의 진리이신 예수님”(요 14:6)은 나누어 질 수 없는 不可分의 전체(All)이며, 하나(One)이시다. 따라서 하나(一)와 모두(一切)가 서로서로 통하여, 하나(一)가 곧 모두(一切)이고 모두(一切)가 바로 하나(一切)가 된다. 따라서 예수님이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요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예수님을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다(一卽一切 一切卽一). 이러한 경지는 “나도 없고 남도 없는”(無他無自) 진여법계(眞如法界)이다.

  예수님은 時空의 경계를 벗어나면 절대면서 상대이고 상대이면서 절대이기 때문에 절대와 상대를 하나(One)임을 선언한 것이다. 따라서 이원성(二元性)을 초월한 “내면의 눈”(마 13:16)으로 모든 사람이 하나(One)인 예수 그리스도임을 깨달아 사랑의 꽃을 피어야 한다. 즉 “일체가 하나도 되돌아 갈 때”(一切卽一), 황금조차 그것의 가치를 잃는다. 그러나 “하나가 일체로 되돌아 갈 때”(一卽一切), 조약돌도 아름답게 빛난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 세상적인 것들을 초월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찾을 수 없으리라. 너희가 안식을 진실된 안식으로 지키지 않으면 너희는 아버지를 볼 수 없으리라”(도마복음 27).

 

  어둠의 ego(ahamkara)를 살찌게 하는 세상적인 것들을 초월하는 안식을 지키지 않으면 광명의 천국을 찾을 수 없다. 내면의 神性(true Self)을 깨닫기 위하여 세상의 집착을 버리는 금욕생활을 하여야 있다. “옳으니 그르니”(是非) 따지기만 하는 탐욕과 미망과 미움으로 가득 찬 겉사람(ego)의 이기적인 마음을 비우고 평등 무차별한 영원한 神性(true Self)을 회복하여야 한다. 이때 “하나님과 하나”(One)가 되어 유한 상대적인 것이 초월되어 무한 절대적인 천국을 누리는 것이다.

  즉 “하나님과 하나”(One)가 되어 “보는 것을 보는 눈”(눅 10:23)인 “내면의 눈”으로 볼 때 일원론적(一元論的)인 전체(All)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진리와 하나”(One)가 될 때 헛된 다른 하나는 사라져 버리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나가 곧 모두요, 모두가 곧 하나”(一卽多, 多卽一)인 不二의 진리가 될 때 소유와 비소유로부터의 자유, 이 세계와 저 세계로부터의 자유, 물질과 정신으로부터의 자유를 성취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