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치면서 움직이니 움직임이 따로 없고, 움직이면서 그치니 그침이 따로 없다.”

 

  그쳤 있다가 움직이니 움직임이 그침 바깥에 따로 있지 않고, 움직이다가 그치니 그치는 것이 움직임 바깥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과 그침은 결국 하나이다. 즉 움직인다는 것은 그침이 있었기에 움직임이므로 그침에 즉한 움직임이다.

 

  예수님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눅 6: 25)고 말씀하셨다. 

 

  누구나 기쁨을 누린 다음에는 곧바로 눈물을 흘리며, 웃으면 그 웃음의 꽁무니를 따라 눈물이 따라 나오는 것이 삼라만상의 참모습이다. 따라서 움직임 속에서 적막한 것을 보라고 한 것이다. 아무것도 정지해 있지 않는 것이다. 삶이란 항상 대립물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므로 무엇 하나 절대적으로 움직이는 것도 그치는 것도 없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어디서 왔느냐?’ 묻거든 저들에게 이르라. “우리는 빛으로부터 왔으며, 빛은 스스로 있게 되고, 굳게 서고 저들의 모양으로 나타난 그곳에서 왔노라”고. 저들이 너희에게 “그것이 너희냐?” 하거든 이르라. “우리는 그 빛의 자녀요, 살아계신 아버지의 택함을 받는 자”라고. 저들이 너희에게 “너희 안에 있는 너의 아버지의 증거가 무엇이냐?” 하거든 저들에게 이르라. “그것은 움직임과 쉼이라”고(도마복은 50).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며, 빛의 자녀 즉 하나님의 아들이다. 우리는 모든 존재의 근원에서 왔으며, 그리고 모든 존재의 근원은 다른 근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자기 근원이며, “스스로 있는 자”(출 3:14, I am that I am)이다. 존재하는 모든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표시는 하나(One)이며, 존재의 본질로써 바로 움직임과 쉼이다. 이러한 움직임과 쉼은 반대의 연합, 행동속의 고요함 그리고 쉼 속의 활기인 전체(One)를 나타내어 차별과 분리를 넘어선다.

  움직임과 쉼이라는 것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만나는 곳에 궁극의 것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선택하면 빗나가기 때문에 선택하지 말라는 것이다. 운동과 휴식이 함께 있게 하라는 것이다. 즉 모든 것 안에 있고 모든 것이니 종합이며 화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