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시기에 "언어와 문자의 담장을 넘어야"(不立文字) 이해가 되어지는 데도 불구하고 유대인들과 같이 심판하는 무서운 하나님으로 대상화하거나. 하나님으로 부터 계시의 말씀을 들었다는 착각으로 스스로 개념화하는 어리석은 자세는 올바른 신앙을 위하여 하루속히 버려야 되지 않을 까요?
老子는 “천하만물은 有에서 생기고, 有는 無에서 생긴다(天下之物, 生於有, 有生於無: 도덕경 40장)”고 하여 기독교의 하나님과 같이 道는 모든 존재의 근원 즉 만물의 근본(萬物之宗)이며, 모든 존재의 시원(天地之始)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老子가 나타내는 道와 선(禪)에서 주장하는 현상세계를 현상세계이게끔 해주는 원리이자 힘이며, 동시에 현상세계 자체인 空은 아무것도 없는 허무가 아니라 형체나 색깔이 없어 볼 수가 없는 것이지만 모든 것을 이루고 만물을 키우는 어머니와 같은 자애로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道와 空의 無的인 성격은 가장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것이기에, 이러한 道와 空의 개념으로부터 기독교는 “우리의 생각과 다른 하나님”(사 55:8)을 대상적으로 인격화하는 신인동형상적(神人同形象的)인 개념을 버려야 함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시기에 "언어와 문자의 담장을 넘어야"(不立文字) 이해가 되어지는 데도 불구하고 유대인들과 같이 심판하는 무서운 하나님으로 대상화하거나. 하나님으로 부터 계시의 말씀을 들었다는 착각으로 스스로 개념화하는 어리석은 자세는 올바른 신앙을 위하여 하루속히 버려야 되지 않을 까요?
老子는 “천하만물은 有에서 생기고, 有는 無에서 생긴다(天下之物, 生於有, 有生於無: 도덕경 40장)”고 하여 기독교의 하나님과 같이 道는 모든 존재의 근원 즉 만물의 근본(萬物之宗)이며, 모든 존재의 시원(天地之始)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老子가 나타내는 道와 선(禪)에서 주장하는 현상세계를 현상세계이게끔 해주는 원리이자 힘이며, 동시에 현상세계 자체인 空은 아무것도 없는 허무가 아니라 형체나 색깔이 없어 볼 수가 없는 것이지만 모든 것을 이루고 만물을 키우는 어머니와 같은 자애로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道와 空의 無的인 성격은 가장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것이기에, 이러한 道와 空의 개념으로부터 기독교는 “우리의 생각과 다른 하나님”(사 55:8)을 대상적으로 인격화하는 신인동형상적(神人同形象的)인 개념을 버려야 함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