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길이 끊어지니,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아니로다.”

 

  믿음은 둘 아니요 둘 아님이 믿는 마음이라, 둘 아님의 마음자리에 들어갔다면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세월도 초월한다는 것이다. 말의 한계를 넘어서는 자리이기 때문에 “언어의 길이 끊어짐”(言語道斷)이다. 이러한 不二의 진리에서는 분별 시비가 없어지는 것이고 생각에서 해방되는 것이며, 과거 미래 현재라고 하는 시간을 초월하는 완전한 참마음의 자리이다.

 

 

  예수님은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여 깨닫지 못함이니라”(마 13:13)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모든 이원성(二元性)을 초월한 오묘한 不二의 진리는 언어의 길이 끊어져서 말이나 문자로써 설명할 수가 없고 “영적 깨달음”(마 6:22)이 있어야 하기에 비유로써 말씀하고 계신다. 즉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진리의 내적 체험)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고후 3:6). 예수님은 “내적인 변화”(metanoia, 막 1:15)인 거듭난 삶을 누리는 자들에게 영적 죽은 자들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본다”(요 3:3)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좋은 크리스찬이 된다"(to become good Christians)는 것이 아니라 “不二의 그리스도가 된다”(to become christs)는 것이다. “말의 한계를 넘어서서 있는 자리”(言語道斷)인 不二의 진리는 “이것저것 마음속으로 생각하는”(막 2:6) 율법의 전문가나 교사들은 깨닫지 못하지만, 無心으로 겸손히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순수한 어린아이같은 자들은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말들의 내적 의미를 발견하는 자는 결코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도마복음 1)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고 구원을 위한 믿음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 말들의 신비를 깨달은 자는 이원성(二元性)인 生死(생사), 선악(善惡)을 초월하여 영원한 “하나의 생명”(One)이 되었기 때문에 죽음을 맛보지 않는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언어의 길이 끊어져서 말이나 문자로써 설명할 수 없는 진리의 심오한 말씀을 발견할 수 있는 자는 “깨달음을 얻는 자”(true Self)이다(마 13:23). “죄로 말미암은 죽음”(롬 5:12)을 포함한 모든 것에서 자유하게 되어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아닌 영원히 현재 속에서 “모든 것이 더하여 지는 축복을 누리는 자”(마 6:33)이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요 14:12)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언어의 길이 끊어진 내적 의미의 진리를 믿고 “깨달은 자”(마 6:22)는 “영원한 예수님”(true Self)과 동등하게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으며, “하나님과 하나”(One)가 되어 죽음의 공포는 일거에 완전히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