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냇가에 심은 나무 제7호 --


- 가정탐방  -

김익래 집사님 댁을 찾아서




     우리가 처음 김익래 집사님댁을 방문했을때, 문 앞에 걸린 예쁜 꽃장식을 보며 신혼집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김익래, 김향섭 집사님은 두 달 김동운, 김동주 자매를 시집 보내고 어머니를 모시고 막내아들 김동욱 형제와 오손 도손 정답게 살고 계셨다.

     우리는 집사님 댁의 자랑 중 하나라는 오미자차의 향기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익래 집사님은 충남 연기군 전의라는 기차역이 있는 마을에서 조부모님과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고 한다. 3Km를 넘게 걸어 주일학교를 다니던 기억을 더듬으며 계속되는 집사님의 이야기...  

“아버지는 6.25때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 직장 생활을 하시며 두 아들 형제를 뒷바라지 하셨어요. 중학교 다닐 때만 어머니와 천안에서 살다가 고등학교, 대학교는 서울와서 다녔어요. 시절이 어려워 아르바이트하며, 공부하며 어렵게 공부했어요.”


     그런 고생 끝에 1965년, 당시 대학 4학년 재학 중이던 집사님은 재학생으로는 아주 드물게 공인 회계사 시험에 합격하셨다. 그러나 고생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뒤 회계사 장교 2기로 군복무를 마치고 회계사 사무소에 취직했지만 월급은 일반 회사의 반 밖에 되지 않았고 6년이 지난 다음에서야 일반 직장인보다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따뜻한 분위기는 무르익어 갔고 우리는 김향섭 집사님의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김향섭 집사님은 청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집사님의 가정에 복음이 뿌리내린 것은 올케 언니가 시집 온 이후라고 하셨다.

    김향섭 집사님 역시 어려운 가정 사정으로 국교 졸업 후 학업을 중단할 위기까지 갔었지만 6년동안 장학금으로 학교를 마치시고 스스로 학비를 마련해 대학교를 다니셨다. 그러던 중 지금으로 말하며 소개팅으로 김익래 집사님을 만나 13개월간의 교제 끝에 삼양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결혼하셨다.

    그 뒤 보금자리를 방배동 지금의 집으로 옮겨 18년 동안 남도교회를 섬겨오셨다. 이야기를 하시며 두 분이 계속 입버릇처럼 말씀하신 것은 감사하다는 말이었다. 두 분 모두 비슷한 성장 과정을 거치며 힘든 시절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에 감사하고, 또 그런 과정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에 감사하셨다.


     이 즈음에서 위는 두 집사님은 세 자녀를 어떻게 교육하였는지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분의 자녀 교육의 핵심은 자율성이었다. 공부, 결혼 모두 자신의 듯에 따라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믿음과 신뢰로 보이지 않는 후원을 하셨다고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동욱 형제의 이야기...

     “부모님이 이해와 믿음으로 자유롭게 맡겨주시니 사춘기 시절 부모님과 큰 갈등 없이 지냈어요. 오히려 학교 일이나 교회 일에 적극 뒷받침 해주셔서 감사하고 바른 생활로 이끌어 주시고 지금까지도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니 우리 부모님이 최고인 것 같아요. 그리고 어머니는 따라 6살때부터 남도교회를 다녔는데 교회 안에서 교육받고, 교회의 분위기 속에서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어 감사해요. 이제는 교회의 분위기를 좀 더 열성적으로 바꾸는 것이 청년의 역할인 것 같아요. 열심히 교회를 섬기시는 집사님들을 보며 본받아야 할 것 같아요.”  이어진 교회에 대한 이야기로 청년부 회장으로서의 듬직함도 엿 볼 수 있었다.

     동욱 형제의 이야기 중에 우리의 시선을 끈 것은 가족이 모두 모여 직은 사진이었다. 집사님의 큰 딸 동운 자매는 지금 할렐루야 성가대를 지휘하는 유인선 형제를 교회에서 만나 2년의 교제 후에 결혼을 하였고, 작은 딸 동주자매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형제를 만나 결혼하였다. 김향섭 집사님은 두 딸을 모두 기독교 가정으로 시집 보낼 수 있었던 것에 또 한 번 감사하셨다.


     마지막으로 김익래 집사님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주신 것에 감사하며 앞으로 신앙생활,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부부 간의 부모, 자년간의 서로 신뢰하고, 사랑과 감사가 넘치는 화목한 가정을 보며 우리도 더불어 감사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 가정 오미자 차의 그 빛깔처럼 은은한 분홍빛 사랑으로 새콤달콤한 사랑의 향기를 전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