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냇가에 심은 나무 제12호 (2001.11)  --


부모의 소원 (창49 :1)


유병근 목사



야곱이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의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대학 진학을 위한 몸부림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당사자인 학생들의 고생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일전 어느 조간신문에 수험생의 한 어머니가 묵주인지 염주인지를 손에 꼭 쥐고 엎드러져 있는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있었습니다.

     성경이나 기독교적 신앙은 묵주나 염주식의 타종교의 소원 성취행위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만 자녀를 위한 부모의 애절한 소원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입시문제 뿐이겠습니까? 취업의 문도 좁아서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 감 에다 비유하고 있습니다. 또 자녀들의 건강과 혼사문제와 진로문제도 부모들의 최대 관심입니다.

     교회내의 부모들 중에는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잘 하기를 소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올바른 복을 받게 하는 것이 부모의 도리로 알고 열심히 기도하는 부모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을 성경에는 부모들의 소원기도가 자녀들에게 그대로 성취된 것에 대한 기록이 가득하다는 점입니다.


     오늘 소개된 창세기 49장은 그중 위 한 경우입니다. 열 두 아들을 두었던 야곱은 노년에 이르러 그 아들들을 위하여 소원의 가도를 하였습니다. 그 기도는 구체적이었고 간절하였으며 떠 예언적이었습니다. 장남 르우벤으로 시작하여 막내 베냐민까지의 기도의 소원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대로 성취되었으며 아버지 야곱이 죽고 난 이후에도 그 기도의 예언은 이루어져 갔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을 위한 기도를 하나님이 정확하게 응답하셨습니다.

     물론 야곱의 자식들을 위한 소원의 기도가 오로지 아버지의 생각이나 우리가 뜻하는 핑크 빛 축복만 소원한 것이 아닙니다. 자식들의 성향과 행위,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적 자세를 나름대로 고려한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아들에 대한 기도는 축복인지 형벌인지 애매한 것도 있습니다. 이 모습은 오늘의 부모들이 자식들에 대하여 무조건 복을 달라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사실 야곱도 그 아버지 이삭의 소원의 기도를 받고, 자랐고, 복을 받기도, 환난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그 복도 환난도 아버지의 기도대로였습니다. 부모의 사랑이 담긴 소원의 기도라면 평안도 환난도 응답의 복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께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때 보다 부모들의 소원기도가 많은 계절에 야곱의 기도를 배웁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간절히 기도합시다. 더 중요한 것은 쉬지 않고 자식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응답은 분명하며 정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