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냇가에 심은 나무 제9호 (1999.12)  --


성탄절 유래에 대하여



     어떤 사실이 본래의 의도와 왜곡되어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리고 무엇이 옳은 가에 대한 논의는 그 논의만으로 사실과는 관계없는 분쟁과 혼란을 낳기도 한다.

     그러므로 ‘무엇이 이렇나’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꺼리를 제공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수많은 비슷하게 알려진 이야기를 다시 하는 것은 시시콜콜한 가십거리뿐 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인대도 무엇에 대한 정의를 사람이 이야기하는 정의 중 맘에 드는 것을 고르고 그냥 믿어 버린다. 하나님의 의도는 뒷전이다. ‘크리스마스를 왜 논쟁의 여지가 있는 형태로 우리에게 주셨는가’ 라는 질문은 우리 신앙을 위협 할 수 있는 물음 중에 가장 하찮은 위협이다.

     하지만 이런 것으로도 실족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지체들이 우리가운데 분명히 있다. 이 하찮은 위협으로도 실족하고 갈수록 ‘진짜’를 알기가 어려워지는 거짓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분별력을 이 하찮은 위협에서 시작해 보자. 크리스마스란 그리스도와 미사란 말의 합성어로서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날을 의미한다. 이 크리스마스의 유래는 고대 로마시대로 올라간다.

     당시 로마에는 Satumalia라는 농업을 추구하는 태양신을 기념하는 축제가 있었다.

     그 후 기독교 국가가 되면서 기독교인들은 기독교가 이교도를 정복했다는 의미로 그 날을 크리스마스라 부르면서 기념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축제가 시작되는 12월25일을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기념일로 삼고, 축제가 끝나는1월6일은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를 방문한 친현일로 삼아 기념하기 시작했다. 그 후 기독교가 가지로 전파되면서 여러 가지 이견들이 대두되어 크리스마스는 존립의 위기를 겪었다.

     우선 동방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에 찬성하는 Constantinople과 크리스마스에 반대하는 Anpioth학파의 대립이 있었으나 결국에는 1월6일을 예수 탄생과 세례의 이중명절로 지내기로 결정했고, 이것은 교회력과 시력지원의 서원이 되었다.

     그 외에 동 로마교회에서는 에베서공회의(432년)경정으로 12월25일을 크리스마스로 1월 현연일로 지내게 되었고, 예루살렘에서는 계속 반대의 입장을 취하다가 6세기 이후 12월25일과 1월6일로 분류해서 경축하게 되었으며, 북 유럽에선 태양이 다시 소생한다는 동지절이라는 명절이 있었는데, 그것을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라는 요한복음 1장 9절의 말씀과 일치화 시켜서 동지절을 크리스마스와 일치화 시켰다. 또 크리스마스하면 생각하는 크리스마스트리도 당시 북 유럽에서 유행하던 나무에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악습을 중지시키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12월25일이 예수님이 탄생하신 ‘당일’은 아닌 것이다. 역사의 우여곡절 속에 날이 정해졌고, 지금은 만인의 축제가 되었다. 특히 크리스마스가 국경일로 정해져있고, 당연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은 정말로 축복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로 우리에게 축복이 되려면 위에 열거된 사실들을 외워서 잘난 척 하거나 연인을 떠올리기보다, 왜 1년에 한 번 공식적인 ‘예수님 오신 날’을 주셨는지 묵상해야 한다. 그건 어쩌면 쫓기며 급급하게 살고 있는 당신을 위한 그분의 배려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