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냇가에 심은 나무 제8호 (1999.7)  --



한반도에 복음을 전해준 하나님의 사람… Robert J. Thomas


미주 밀알선교회 강석진 목사



     그는 영국 스코틀랜드 출생으로서 1863년 목사 안수를 받고 영국 런던선교회 장로교 선교사로서 중국으로 파송을 받고 중국에 와서 우연한 기회에 한국의 천주교 신자를 만나게 되어 한국의 천주교 박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한국선교에 대한 꿈을 불태우게 되었다.

     1866년 7월 토마스 선교사는 중국 천진에 체류 중인 미국 성선 제너랄 셔만호가 한국에 상업차 떠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선교의 열정을 불태우던 한국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런던 선교회에 보낸 편지에 그때의 형편을 적어 보낸 것이 있다.

“나는 상당한 분량의 책들과 성경을 가지고 떠납니다. 조선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을 생각에 가슴 부풉니다… 런던 선교회 이사들이 이 성경의 교훈을 전하기 위해 아무런 인간의 과오와 혼합되지 아니한 심정으로 미지의 나라도 떠나는 나의 노력을 언젠가는 인정해 주리라 믿으면서 나는 갑니다.”


     약 일주일 후, 셔만호는 대동강 입구 용강군에 도착하여 계속 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평양으로 항진하였다. 이때 평양의 문정관이 무역은 국법으로 금하는 것이므로 물러가 달라는 부탁을 하였지만 이를 무시하고 항진을 하자 화승포로 사격을 하기 시작하였고 대동강물이 줄어들면서 배는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집중적인 불의 공격을 받게되어 모든 선원들은 강으로 뛰어내리기 시작하였고 토마스 목사도 더 이상 배에 있을 수 없어서 성경책 몇 권을 품에 품고 강으로 뛰어내려 헤엄쳐 나왔으나 조선병사인 박춘권에게 붙잡혔다.

     그는 그의 칼에 죽임을 당하기 전에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서 성경책 한 권을 주었는데, 박춘권은 처음에 이를 받지 않았다가 되돌아 갈 때 이것을 주워 집으로 가지고 갔다. 그는 후에 예수를 믿고 신자가 외었으며, 안주교회에 영수가 되었다.

     그리고 그 성경을 뜯어 벽지로 썼던 영문주사 박영식의 집은 평양 최초의 교회인 널다리골 예배당이 되었다. 박춘권의 조카 영태도 예수를 믿고 미국 남장로교회 선교사 레널즈의 조사가 되었고 한국인 성서번역위원의 한 사람으로 큰 공헌을 하였다.


     9월 2일로 그의 나이 27세였다. 그는 이렇게 숨져갔지만 그가 전해준 복음은 한국 교회의 중심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양의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교회는 1927년 그의 순교를 기념하여 그가 죽어 묻혀 있다고 생각하는 쑥섬에 1천 여명의 교인들이 모여 추모예배를 드렸고, 1932년에는 토마스 목사의 이름 첫 자 모양인 “T” 자로 예배당을 지어 토마스 목사 기념 예배당으로 봉헌하였다.


      그는 흑암 중에 있던 땅에 한줄기 빛의 사자로 왔으며, 황무한 조선반도에 한 알의 밀알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평양을 거룩한 도성으로 회복시켜 주신 것이다.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은혜의 날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케하리라”(사 49:8)


한국교회가 여러 헌신적인 선교사님들을 통해 축복 받은 것을 주님 오실 때까지 복음전파에 힘쓰는 남도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위의 글은 “역사로 본 한국의 복음화와 세계선교의 사명” – 미주 밀알선교회 강석진 목사님의 글에서 발췌한 것으로 더 자세한 내용을 보시고자 한다면 인터넷 사이트 http://kcm.co.kr/mission 를 여행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