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냇가에 심은 나무 제14호 (2003.5)  --



이리안 자야의 성자
(원제 "화해의 아이")


김의준 안수집사




나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 축에 속한다고 스스로 늘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데 최근에 내가 좋아하는 어떤 분의 권유로 제목부터 그리 익숙치 않은 책 한권을 접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책의 내용은 그동안 읽었던 것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 매우 재미있고 유익한 내용이었다고 생각되며, 따라서 나의 신앙 성정에 두고두고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1955년 캐나다의 자그마한 도시인 트리힐스(Three Hills) 의 프레리성경학교(Prairie Bible Institute)  강당에 모인 학생들이 백발을 깔끔히 뒤로 빗은 채 코끝 가까이 걸린 안경 너머로 회색 눈동자를 강렬하게 반짝이며 강의하고 있는 오지선교연합회(Regions Beyond Missionary Union)에서 나온 에벤에셀 바인(Ebenezer G.Vine) 할아버지의 특별한 열정에 주목하고 있었다.

이 강의는 네덜란드령 뉴기니아(지금은 인도네시아의 Irian Jaya)섬의 서남부, 태평양 남쪽 가장자리, 적도 바로 아래에 위치한 아라푸라해로 흐르는 크론켈 강유역의 사위족이 살고 있는 마을, 쉽게 상상하자면 식인종이 살고 있는 석기시대의 삶과 풍습이 그대로 남아 어떤 정부의 통제력도 미치치 않는 야만스러움이 생활방식인 종족들이 사는 지역에 최초로 파견할 선교사를 찾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는 자리였다.

이 지역의 여건은 고지에는 어름이 뒤덮여 있지만 인간이 살고 있는 낮은 습지에는 폭우와 폭염 그리고 높은 습도, 각종 열대 질병, 악어 뱀 등과 같은 맹독성 동물, 언제 어디에서 인두식인(人頭食人)의 습격을 받아 희생될지 모르는 야만의 땅, 거기에다 수천년동안 그들의 의식을 지배해 온 풍습 그리고 언어에 의한 의사 소통의 벽이 가로막고 있는 고립무원의 지구의 최변방으로서, 어느 누구도 선교사로 자원하기란 결코 쉬운 곳이 아니었으며, 더욱이 식인종들이 사는 문명의 저편 깊숙히 가족과 함게 들어가 선교사역에 생을 바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때 이 강연의 시종을 진지하게 듣고 있던 20세 가량의 한 청년의 눈빛이 유난히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3년전 그는 이 학교에 등록하기 전까지만 해도 구태의연하고 진부하게만 느껴졌던 성경말씀이 새로운 의미로 부가되기 시작하였고, 하나님께서 내게 가기를 원하시는 곳이 바로 여기라는 생각이 점점 확신으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는 이 학교 학생 가운데 금발의 캐롤 소더스트롬(Carol Soderstrom)이라는 여학생과 함께 이 대장정의 사역에 참여하기로 뜻을 모았고, 이를 위해 그녀는 간호사 교육을, 그는 목사와 청소년 지도자 수련을 받는 등 필요한 준비를 하였다. 그 후 그는 그녀와 결혼하여 1962년 3월 19일 마침내 벤쿠버를 출발, 그해 4월 13일 네덜란드령 뉴기니아의 북쪽 쎈타니에 도착하였으며, 다시 내지 깊숙히 들어가 크론켈강 지류에 연해 있는 마우로, 까무르, 해남 마을 인근에 선교의 교두보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어느정도는 예상했던 바지만 그들 곁에 갑자기 끼어든 이방인(뚜안)의 삶에는 온갖 사건과 사고 갖가지 감당하지 어려운 문제들이 때를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에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을 이어 온 그들만의 풍습, 가치관, 세계관, 토속종교관등의 차이와 이로 인한 오해, 그리고 돌발적인 위험, 이웃 마을간의 반복되는 갈등, 싸움, 배반, 살인 등 끝없는 혼돈이 지배하는 암흑의 땅에서 한 뚜안의 선교사역은 밤낮이 있을 수 없었다.



특히 배반을 하나의 이상(理想)으로 숭상하는 그들은 우정으로 살찌워 그 결실을 살해하여 먹어치우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끔찍스런 인간관계, 다른 마을 사람들의 인두(人頭)를 사냥하여 먹고 두개골은 어린이들의 장난감으로, 뼈는 여인들의 장신구로 쓰는 야만성, 심지어 그들은 죽은 부모의 두개골을 손질하여 장난감이나 베개로 사용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괴이한 풍습, 그리고 사소한 감정의 대립에도 인명을 살상하고 이로 인해 끝없이 반복되는 보복 살인이 그들 부족의 삶인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 인간의 이상주의가 어떤 설득력을 가질 수 있으며,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기독교의 복음인들 과연 어떤 방법으로 접근이 가능할것인가?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는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오직 주님의 예비하심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의지해 그들의 풍습, 가치관, 세계관을 이해하고, 마을간의 화해를 이끌어 내기 위해 그들의 삶에 더 가까이 접근하여 구원의 문을 열 키를 찾기 위한 끝없는 선교전쟁은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까무르인과 해남인 사이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목격하였다. 두 마을이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영아를 서로 교환하는 것이었다. 그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정을 초인간적으로 억누르고 치러지는 행사였다. 말하자면 그들의 전통에 따라 전쟁을 끝내고 서로 화해하기 위해서는 두 마을 사이에 영아를 교환하고 아기의 아버지의 이름도 서로 교환하여 부르도록 하는 그들의 고유한 풍습에 따른 것이며, 이것은 그들이 전쟁을 끝내고 화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것이다. 이어 두 마을 사람들은 상대 마을에서 보내진 어린아이 위에 손을 얹고 화해를 선언하는 공식행사를 마친 후 마을에서는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큰 허점이 있었다. 어느 한 평이라도 아이가 죽기라도 하면 이 평화 조역은 더 이상 지킬 의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아 사망율은 지극히 높고 평균 수명은 매우 낮은 이 지역에서 이 조약의 결과는 매우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큰 희생을 치르고 얻어진 평화는 다시 깨질 확율이 높은 것이다. 그는 이 한시적인 평화의 조건을 새로운 화해의 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하 평화를 그들의 전통속에 뿌리내리도록 하기위해 그들의 전통에 따라 행해지는 이 타로프팀(화해의 아이) 교환의식과 연결하여 실마리를 풀어나가기로 하고 이를 예비하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하였다. 이를 위해 그들을 교육하고, 설득하고, 나아가서 그들의 삶 속에서 교감을 이끌어 내기 위한 끊임없는 작엄에 착수하였다. 마침내 그는 그 꿈을 이루어 냈다.

그 결과 그들은 사랑하는 자식을 적대 마을에 화해라는 명분의 볼모로 보내야 하는 비극을 막을 수 있게 되었고, 많은 원주님들을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게 하였다. 마침내 그 지역에는 그들 손에의해 큰 교회가 세워졌고, 지금은 수십만에 가까운 사위족이 복음화 되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한 젊은 선교사 부부의 결단과 희생적인 사역에 의해 성취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에서 영원히 소외되어 하나님을 모르고 죄와 사망에서 신음하고 있던 원시 부족사회를 복음화 시킨 것이다.


나는 백여년전 이 땅(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 온 당시의 상황을 잠시 상상해 본다. 그 때 복음에 미개했던 태평양 서북 변방에 위치한 한반도에서도 하나님의 명을 받은 뚜안들의 값진 희생과 거룩한 순교가 있었고, 그 댓가로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다는 감회가 잠긴다.


지식 정보화 사회를 표방하는 현대사회에서 있어서 분명과 이념의 식인종들이 우글거리는 복음의 오지는 어디며, 복음을 모르는 미개한 원시인은 없는가? 아직도 하나님의 복음이 들어오는 것을 방해하고 선교사를 핍박하는 지역이 도처에 산재해 있어 나를 심히 슬프게 한다. 북한이 그렇고 중국을 위시한 일부 공산권이 아직 그렇다. 그리고 우상을 섬기는 많은 미개한 나라들이 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 젊은이들에게는 어떤 결단과 도전이 필요한가? 나는 지금 에벤에썰 바인 할아버지의 심정으로 이 몇 줄의 글을 남도 청년들에게 보낸다. 이 졸문(拙文)이 여러분들이 고민해야 할 문제를 제시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아울러 이 기회를 화해의 아이(PEACE CHILD: 존리차드슨 지음, 생명의 말씀사)를 추천 도서로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