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냇가에 심은 나무 제5호 (1998.3)  --


- 초대의 글  -

교회와 지역사회


신예리 (중앙일보 생활부기자)



     교회란 무엇일까? 사람에 따라 신앙에 따라 수백수천가지의 대답이 나올 수 있는 질문일 것이다.

     최근들어 종교계에 일만만파로 번지는 새로운 흐름은 “교회=열린 공동체”라는 또 하나의 대답을 추가하려는 듯 보인다. 그 흐름은 바로 “지역사회와 호흡을 함께 하는 교회”로의 다양한 변신이다.

     서울 성북구 Y교회의 경우 지난해 가을부터 1주일에 한번씩 동네 주민들을 대상으로“여성대학” 프로그램을 개설, 폭발적인 호응을 받고 있다. 유명 강사들을 초빙해 정치, 문호, 의학, 교양 등 갖가지 주제들로 진행되는 이 강의엔 비단 신자들뿐만 이니라 일반인 수강생들도 대거 몰린다.

     강좌를 열때마다 인근 아파트 관리비 부과내역서에 안내광고를 끼워 넣는등 열성적으로 홍보에 나섰던 결과다. 서초구 H교회가 열고 있는 여성대학도 수강 신청자들이 1천여명이나 몰릴 만큼 인기가 대단하다. 설문조사를 통해 강의 주제와 강사를 정하는데다 Y교회와 마찬가지로 수강생 자격에 조건을 두지 않다보니 신자가 아닌 수강생의 비율이 절반 가량 된다고 한다.

     이들 교회가 종교냄새를 전혀 풍기지 않는(?) 교양강좌를 적극적으로 펼치는 이유는 무얼까? 관계자들은 현대사회에선 각 교회들이 지역사회문화생활의 구심점이 돼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다.

     최근 IMF한파로 인해 내핍과 절제의 미덕이 강조되면서 교회는 지역사회에 건전 소비를 유도하는 구심점 역할까지 떠맡고 있다. 1월초 서울 여의도 S 교회에선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 운동” 의 일환으로 벼룩시장이 열렸다. 이날 벼룩시장을 찾은 교회신자와 주민은 무려 3천여명, 의류 4천 5백여점, 신발 1백 50여켤레 등이 두시간 만에 동이나는 성황을 거뒀다. 또한 이미 지난해 4월 “청빈운동선언”을 발표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천주교도 각 성당에 알들시장을 개설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한다.


     당시 천주교의 “청빈운동선언” 은 오늘날 교회가 일반사회와 마찬가지로 외형을 키우고 고급화하는데만 몰두하여 사목활동이 신자들만을 위한 지족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비판에서 비롯돼 시사하는 바가 컸었다. 교인들이 청빈한 생활을 추구하려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것은 곧 어려운 이웃과 지역사회로 눈길을 돌리자는 뜻이다. 실제로 천주교 지방교구들에서는 성당을 개방해 지역사회의 “희망의 집” 으로 활용하며 농촌살리기운동, 환경운동, 건전 생활문화 운동을 펼치는 사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개신교에서도 예배당, 교육관, 기도원 등으로 구성되던 교회 시절에 지역주민을 위한 사회복지관을 신설하는 교회가 하나둘씩 늘어나는 것은 그런 추세와 맥이 닿아 있다. 서울 구로구 S교회처럼 아얘 예배당을 지역주민에게 개방해 학생들의 공부장소로 문화행사 공간으로 사용토록 하는 곳도 많다.

     그런가 하면 교회와 지역사회가 보다 적극적인 의미로 서로 협력해 함께 발전을 추구해 나가는 모델도 있다. 인근 학교가 수업이 없는 주일마다 예배 공간을 제공하는 대신 교회는 교회 제정의 50%이상을 장학금 및 이웃 구제활동에 바치는 이른바 “건물없는 교회”다. 서울 잠실의 J여고 소강당에서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는 J교회는 교회 건물 하나 없이도 신도수가 2천여명에 달하는 큰 교회. 이 교회는 지금껏 신도들의 헌금으로 J여고의 대강당 건립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한 것은 물론, 각급 학교에 대한 장학금과 특수 질병 아동을 위한 치료비를 대거 기부했다고 한다.

    주변에선 교회는 학교와 지역사회를 위해서 돈을 쓰고 학교는 지역사회의 문화공간으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미래 교회의 한 모델이 될 수 있다는 평이다. 신도들 역시 다른 교회에서 교회 건물을 짓기 위해 무리한 헌금을 요구하는데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면서 헌금의 상당분을 사회에 환원한다는데 보람을 느낀다는 반응이다.


     지금껏 살펴본 것처럼 교회들이 지역사회에 더욱 깊숙이 뿌리내리려는 최근의 움직임들은 교회가 스스로의 벽을 깨고 “보다 낮은 곳으로 임한다.”는 예수의 삶을 닮아가려는 자세로 보여 바람직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같은 교회의 변화가 우리 사회를 보다 성숙하고 건강한 공동체로 이끌어 가는 견인차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