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냇가에 심은 나무 제5호 (1998.3)  --


- 가정탐방  -

우영제 집사님 가정을 다녀와서



     기쁜 마음으로 맞이해야 할 새해가 어쩐지 어둡고 우울한 소식들로 우리의 마음을 눅눅하게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 절망이 엄습해 와서 끝내 햇빛 한 점 들어올 구멍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의 주님되신 그리스도로 인해 소망을 가지는 자들이 아닌가! 비록 우리의 삶에 어려운 시기를 맞이했지만 우리들 마음만은 소망을 잃지 말아야 겠다. 아니 더욱 더 커다란 포부와 희망을 가지고서 올 한 해를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줄 아는 지혜를 배워가며 더욱 알차게 살아야 겠다.

     새로운 다짐으로 새해를 맞아 탐방팀이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할렐루야 성가대 대장을 맡고 계시는 우영제 집사님 댁이다. 교회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삼익 아파트 2동, 그곳에 우집사님과 홍오순집사님 그리고 외동딸 숙영자매(청년1부)가 오붓하게 살고 있다. 이곳에서 사신 지가 올해로 17년째가 된다고 하니 방배동과는 오랜 인연을 맺고 살고 계시는 셈이다.

     우집사님이 태어나신 곳은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 6남매중 셋째 아들로 위로 누님과 형님이 계시고 아래로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다고 한다. 아버님께서 임천교회 장로님으로 계셨기 때문에 우집사님을 비롯한 가족들은 어려서부터 기독교 가정의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자랄 수 있었고 현재는 권사와 집사가 되어 잘 섬기고 있다고 한다.

     우집사님이 처음 신앙생활을 한 곳은 임천장로교회. 당시 그 지역에서는 꽤 유명하고 큰 교회에 속하는 곳이었다. 그때 함께 주일학교에 다닌 친구들 중에서 지금은 목회자가 되어 큰 교회의 목회자가 된 친구들이 여럿이 된다고 한다. 우집사님은 임천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전으로 올라와 중학교를 다닌뒤 다시 서울로 올라와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그리고 나서 당시 간부 후보생(현재의 ROTC의 모태가 되는)으로 군에 입대하여 14년간 복무하다 영관장교로 퇴역했다. 결혼은 역시 군에 있으면서 했다.

     결혼에 관한 에피소드는 우집사님이 군인의 신분이면서도 어찌나 자상하고 여성을 배려하는 마음이 남다르던지 처음엔 이상형이 아니라고 시큰둥하던 홍집사님이 시간이 갈수록 그 노력과 정성에 감동하게 되었고, 끝내는 결혼을 승낙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때의 그 자상함과 꼼꼼함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시다고...

     홍오순 집사님은 경기도 화성군 남양면 온석리에서 2남 2녀중 맏딸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아버님이 일찍 세상을 떠나셨고 어머님께서 홀로 자녀들을 키우며 사셨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님은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셨고 홍집사님만 어렸을 때부터 집근처에 있는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집사님을 만나 신앙의 가정을 이루게 된 것이다.

     우집사님이 군에서 퇴역한 후에는 경기도 양주에 있는 토평리에서 처음으로 양돈업을 시작했다. 그 후 경기도 화성군 남양면 온석리로 장소를 옮겨 제법 자리를 잡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96년에는 폐업을 하고 대신에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서울의 집과 농장을 왔다 갔다 하시며 일을 보고 있고 앞으로는 농장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계획중에 계시다.

     살아 오시면서 생활적 어려움은 별로 없었지만 신앙적으로는 커다란 어려움을 만나 오랫동안 갈등의 나날을 보낸 적이 있었다고 한다. 현실과 괴리감이 있어 보이는 신앙적 삶 때문에 오랫동안 회의에 빠졌고 그래서 언제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의문투성이요 해결되지 않는 궁금증이었다고 한다. 오랜동안 방황하다가 한 동안은 교회조차 나가지 않게 되었으나 그러면서도 교회와의 인연은 끊지 못하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장안동으로 이사한지 얼마 않돼 그 근처의 교회에서 열리는 부흥회를 참석했다가 그 동안의 갈등했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모든 것이 왜?왜?라는 의문과 반문으로 이어지던 것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오묘하신 뜻 가운데서 이루어짐을 깨닫게 되었다.

     그 후 회개의 기도를 드리게 되었고, 이때부터 새로운 신앙생활의 전기응 맞이하게 되었다.그러나 그 후에도 가끔씩은 갈등을 겪기도 하다가 지금으로부터 4년전에야 비로소 모든 문제를 해결받고 순종하는 자녀가 되었다고 한다. 그때는 뭐든지 내가, 내뜻대로 하려던 것에서, 이제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항상 마음이 기쁘고 결과에 대해서는 무조건 순종하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홍집사니은 새벽기도와 철야기도를 빠지지 않으시는 신앙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할렐루야!

     우집사님 부부가 남도교회를 나오게 된 것도 81년도 장안평에서 방배동으로 이사오면서 외동딸 숙영자매가 먼저 남도교회 유치부를 다니게 되었고, 그 뒤 자연스럽게 우집사님과 홍집사님이 남도교회의 식구가 되었다고 한다. 그 때는 제 2 원동교회 시절이었다고 한다.

     외동딸인 숙영자매는 성격이 활달하고 신앙생활에도 열심을 내는 편이다. 그래서 중고등부 시절에는 남도교회 역사상 유일하게 여자로서 회장직을 맡았었고, 고3때라고 해서 주일을 빼먹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한다. 대학 역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기독정신에 입각한 학교에 들어 갔고 들어가서는 물론 학교에 소속된 한나선교단에서 찬양대 단장으로 활동하며 활발한 선교활동을 했다고 한다. 하나님 일이라면 최우선 순위로! 그 결과 올해는 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서울대 대학원 불어불문학과에 입학하게 되는 영광도 얻었단다.

     우집사님은 성가대 대장으로, 홍오순 집사님은 구역장으로 그리고 숙영자매는 성가대 반주자이며 중고등부 교사로 우리 남도교회의 찬양과 교육을 위해 수고하는 멋진 가족을 탐방하고 보니 왠지 마음이 흐뭇해진다. 이렇게 보이지 않게 뒤에서 우리 교회를 사랑하고 우리 교회의 부흥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보니 마음이 든든해진다.

     보이지 않는 기도와 찬양을 통한 아름다운 충성이 한 알의 작은 밀알이 되기를 바라며 새해 첫 탐방을 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