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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예수 그리고 하나님"


유병근 목사


 


설교본문


누가복음 9장 46~48절

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47.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48.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설교요약


오늘 본문에는 12제자들이 '누가 크냐?'는 변론이 일어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시고 '이런 어린아이 같이 되라.'고 교훈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사랑하셨습니다.

'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하셨고,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라고 하셨으며, '천국이 이런 ㅈ달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본문을 통하여 어린아이들과 우리와의 관계를 설교하려 합니다.



1. 여러분 어린이를 많이 낳읍시다.

어린이 날, 어린이 주일이라고 하지만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행사인 경우가 있습니다. 내게 어린 자녀가 없거나 우리 가정에 자라나는 아이들이 없는 탓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이전과 달리 어린 유초등부 어린이들이 매우 부족합니다. 여러분들이 자녀를 낳지 않는 까닭입니다. 성경의 원리는 생육하고 번성하라 이지만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자거나 둘도 많다, 혹은 '무자식이 상팔자'식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우리 주변에서 멀리 있고, 이로 인하여 인구 감소가 극심하여 경제에까지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어린이들이 가정에 교회에 가득차야 합니다. 예수님이 어린이들을 축복하십니다. 젊은 부부 여러분, 자녀들을 많이 낳읍시다. 자식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상급입니다.



2. 여러분 어린이를 영접합시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영접하라고 하셨습니다. 영접이란 영어의 Receive, 즉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과거 유대나 우리나라에는 어린이들을 숫자에서 제외를 하였습니다. 여자아이들은 더욱 냉대를 받았습니다.

요즘은 젊은 부모들이 어린 자녀들을 잘 키우는 것을 보면서 참 좋은 사회로 변하였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잘 하는 일입니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잘 먹이고, 잘 입히며 잘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어린이들을 유과, 유기, 냉대, 구타, 욕석, 학살하는 비극들이 있음은 서글픈 일입니다.

본문 48절을 여러분들의 말로 표현을 해 보십시오,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예수)를 영접함이요, 나(예수)를 영접함은 나(예수)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표현을 반대로 묘사한다면 '어린아이를 영접하지 않음은 곧 에수님과 하나님을 포기하는 위험한 일'인 것입니다.



3. 여러분 어린이에게서 배웁시다.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은 제자들 간에 서로 높아지려는 교만입니다.

남에 대하여 시샘을 내는 것에서부터 말과 행동으로 남을 비하하고 자신이 으뜸되려는 악한 자세인 것입니다. 이런 변론이 일어난 것은 사탄에게서 스며들어 온 것입니다.

사탄은 본래 하나님의 자리를 탐내다가 쫓겨난 악한 것들로 지금도 하나님보다 더 높아지려는 악령들입니다. 이들은 지금도 사람들에게 교만을 스며들게 하여 교만한 세상을 만들려고합니다. 그러므로 '누가 더 높은가?' 누가 더 크냐?'는 식의 변론은 마귀의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어린 아이들을 포본으로 '어린 아이같이 되라.'고 하심은 큰 교훈입니다. 단순성(칼빈의 해석), 단순성과 가르치기 쉬운 점(클라크) 단순성과 겸손과 신앙(벵겔)들의 해석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겸손입니다.

제자들도 처음에 부름을 받았을 때는 겸손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그러나 사역을 하면서 비교심리가 나타나고 남보다 더 인정과 칭찬을 받고 싶어 하면서 교만해 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린이에게서 겸손을 배우게 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우리는 교만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