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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에게 합당한 가정"


유병근 목사


 


설교본문


마태복음 10장 34~39절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설교요약


본문을 보니 주님에게 합당한 가정이 있는가하면 그렇지 못한 가정이 있씁니다. "내게 합당치 않다"는 말씀이 3회나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 합당한 가정이란?



1. 진리를 위한 투쟁이 있는 가정입니다. (34~36)

34~36절의 말씀을 요약하면 "진리 투쟁의 가정."입니다.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말라. 검을 주러 왔노라."는 말씀을 보십시오. 주님은 화평의 메시야이십니다.(사 9:5, 마 21:5) 그러나 이 화평은 죄를 청산, 제거한 바탕위에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검(칼)으로 수술을 하고 난 뒤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죄와는 타협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분쟁이 있고 순교자가 나오는 것입니다. 가정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평화로운 가정을 위하여 분쟁이 필요합니다. 부자간에 모녀간에 고부간에 믿음문제, 죄 문제의 분쟁이 있습니다. 도둑의 아버지에게 교회 다니는 아들이 있다면 무당 시어머니와 집사인 며느리가 있다면 교히를 다니지 않는 아들과 목사나 장로인 아버지가 있다면 다툼은 당연한 것입니다. 죄와 의의 싸움입니다. 진리투쟁입니다.



2. 주님을 제일 사랑하는 가정이라야 합니다. (37)

37절 말씀은 가족에 대한 사랑을 무조건 금지하신 것이 아닙니다. 가족사랑의 단어는 자연적인 사랑, 즉 필레오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향한 사랑은 사랑의 극치인 아가파오의 사랑입니다. 사랑의 본질이 다릅니다. 자연적인 사랑은 소멸형입니다. 그러나 아가파오의 사랑은 영구적인 것입니다. 영원사랑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일가친척을 두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고향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이나 외아들 이삭을 하나님의 요구대로 모리아산에 데려다 바친 것은 이런 경우입니다.

가정이냐? 주님이냐? 의 기로에서 마땅히 주님을 더 사랑하여야 함은 성도의 자세입니다. 여러분의 사정에서 누구를 제일 높이며 무엇을 제일로 사랑합니까?

초기 한국(조선)에 왔던 미국의 선교사들을 지원하였던 당시의 미국교인들 중에는 자녀들의 학비, 결혼비용, 후손들을 위한 유산들을 보내옴으로 감동을 준 기록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주님은 자녀나 배우자, 후손들 보다 더 사랑한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가족을 위하여 생명을 바쳐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3. 십자가를 지고 가는 가정이라야 합니다. (38)

십자가는 사형도구입니다. 유대법에서는 십자가 사형제도가 없습니다. 로마제도입니다.

죄수가 사형장까지 십자로 된 형틀을 어깨에 지고 가서 그 형장에서 메고 온 십자가에 메달려 죽음을 당하는 끔찍하고 수치스러운 형틀입니다. 이 십자가를 주님이 지신 것입니다. 주님은 대속의 특별한 십자가를 지셨지만 우리가 지고 가야하는 십자가는 각양입니다.

가족들을 주님께 인도함에 따르는 힘든 일과 같은 작은 십자가로부터 우리 가정에 요구하시는 주를 위한 큰 사명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저의 가정의 경우 남편인 저가 지고 갈 목사의 십자가가 있고, 아내는 사모의 십자가가 따로 있듯이 가정마다 각기 감당을 하여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여러부느이 가정에 십자가가 있습니까? 도 잘 지고 가고 있습니까?

혹시 무겁고 힘들다고 십자가를 피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삭개오와 그 가정의 변화는 가정의 십자가를 잘 지고 가는 모델입니다. 예수를 가정에 영접하기 이전에는 부자요 유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영접하면서 그 부요함은 남의 것을 착취한 것이 들추어집니다. 부자되느라고 남을 돕지 않음이 들추어집니다. 이런 죄를 두고는 참 행복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영접한 후에 주님 때문에 청산의 십자가를 집니다. 남의 것을 착취한 것을 4배로 갚습니다. 또 재산을 정리하여 절반을 구제합니다. 이 결단을 수행함에 있어서 감당하는 고난이 십자가입니다. 이와 같은 십자가가 있어야 합니다.

성도려어분 주님 사랑을 받는 가정을 만듭시다. 주님에게 합당한 가정을 만듭시다. 진리 투쟁, 주님 제일 사랑 주를 위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가정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