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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신분으로 오심의 예언"


유병근 목사


 


설교본문


이사야 53장 1 ~ 6절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설교요약


오늘의 성탄절기는 교회보다 교회 밖에 더 요란한 것 같습니다. 어느 대부기업에서 홍보한 "기쁘다 무이자 오셨네"라는 선전무구는 오늘의 성탄절이 얼마나 세속에 찌들려 있나를 보여주는 단면일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어쩌면 2000년전 베들레헴 주변에서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그 마을에 호적하려고 고향을 찾은 사람들로 북적대노라고 만삭이 되어 방을 구하는 요셉과 마리아 부부를 눈여겨보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겨우 마굿간에서 나시게 되고 누울 자리가 없어서 구유에 누인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푸대접을 받으신 것입니다. 무시함을 당하였습니다.  왜 이랬을까요?



1. 메시야! 이분은 사람들의 눈에 낮은 신분으로 오실 것이 예언되어졌습니다.

유이사야서 52:13~53:12는 기원전 700년경에 예언한 내용입니다. 오실 메시야의 모습은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으며, 고운 모양이 없고 풍채도 없으며 사람들의 눈에 흠모할 만한 것이 없을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불교의 석가는 왕족의 왕자로 왔습니다. 공자도 관리의 아들이었고 자신도 대사구의 직위를 누렸으나 에수는 낮은 자로 오실 것이 예언되어졌습니다. 그 이유는 낮고 천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조인인 우리에게까지 낮아지신 것입니다.



2. 낮은 신분으로 오실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라고 바울은 예수님의 낮게 오심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빌 2:6~8)

하나님이 사람의 몸으로 오시는 성육신, 처녀의 몸에서 나심, 말구유에 누이심, 헤롯왕의 표적이 되어 학살령 아래 놓임, 애굽으로의 피난,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할 만큼 소외 지역인 곳에서의 성장은 모두가 낮아지심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하고 내 몸숨을 대속 물로 주려함이라,"고 하시면서 가난한 자, 병자, 고아와 과부, 세리의 친구셨습니다.



3. 주님은 우리를 향햐여 낮추라고 하십니다.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요 13:14)고 하셨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42~43)고 하셨으며, "누구든지 자기를 눚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2)고 하셨습니다. 이 교훈은 불변의 진리요 교회존립의 방법이며, 세상을 향한 중대한 사명입니다.

한 때 자랑스럽게 여기던 유럽등지의 교회들의 쇠퇴 원인 중의 첫째가 섬김과 희생을 외면한 교회의 귀족화 였습니다. 시설의 화려함, 경영의 세련됨, 저명인사들으르 초빙하여 단에 세우는 일들, 유명인들이 교회를 장악하면서 귀족교회를 지향한 것입니다. 현대 교회들 중에도 높으신 분들이 많아서 섬김, 희생, 봉사가 약화되는 소위 귀족교회들이 늘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입니다. 자연히 섬김과 흐생이 약해집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섬김이나 희생은 공로가 아니요 구원의 방편도 아닙니다. 그 은혜가 감사하여 나 자신을 섬김의 도구로 낮추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요구요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이 의미를 알지도 못하고 흥청거림 속에서의 성탄 맞이하는 자세를 경계합니다. 우리 죄로 인하여 주님이 오셨으니 일면 황송하고 감사함으로 맞이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