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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족을 배우는 삶"


유병근 목사


 


설교본문


빌립보서 4장 11 ~ 13절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설교요약


사람의 소유 본능은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일 것입니다. 이런 본능으로 인간은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게 되는 유익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이 좋은 본능을 욕심과 탐심으로 추락을 시켜서 죄를 잉태하고 그 죄가 사망을 초래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욕심을 내지 말고 있는 바에 대하여 족한 줄로 여기라고 교훈합니다. 더 가지려는 본능과 가진 것에 족하게 여기는 두 사이의 삶을 조정하여야 하는 것이 크리스챤의 삶일 것입니다. 감사절에 이 말씀에 은혜 받고자 합니다.



1. 사도 바울이 교훈하는 자족의 근원(11).

"어떠한 형평에서도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나니"라는 바울의 표현은 감동적입니다.

"자족"이란 스스로 만족하는 자세입니다. 자족의 헬라어는 "아우탈케스"즉, 당시 "자연스럽게 살라."는 모토로 유명한 스토익과 철학의 기본 단어입니다. 이 철학은 모든 일에 자기에게 만족하여 자기 뜻으로 환경의 힘을 항거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의 철학 자세는 또 다른 철학자들에게도 있거나 타 종교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삶의 자세에 일반적으로 일리가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자족의 근원이 자기 자신이지만 본문에 바울의 주장은 자족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둡니다.

"내가 주 안에서 기뻐한다."(10), "내게 능력 주시는 자안에서"(13)가 자족의 근원입니다.



2. 환경에 승리하는 자족의 모습(12)

"나는 비천에 처 할 줄도 알고 모든 일에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이라는 표현을 보십시오. 그는 지금 옥중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자족합니다. 그는 자비량 선교사입니다. 투옥 중에 수입이 끊어지고 가난합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만으로 충분하였습니다. 능력을 주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고 하시면서 그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성자 예수님의 자족의 근원은 성부하나님이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은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심은 우리의 자족의 근원이 하나님, 그리고 우리 주님이셔야 합니다.



3. 왜 자족의 삶이 잘 안될까요?

1) 불신자들의 자족이 불가능한 것은 그 근원이 불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욕심, 다른 이들과의 비교심리에서 오는 부족감 같은 것이 시기와 질투를 초래합니다. 에스더서의 하만은 제 2인자의 위치를 족하게 여길 줄 모르고 문지기 모르드게를 보아내지를 못하였습니다. 아합왕 또한 왕이면서도 궁중 옆 나봇의 포도밭을 탐내었습니다.

2) 신자들이 자족을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라는 말씀을 순종치 않아서입니다. 그리고 세속화되어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의 사고를 가지고 사는 까닭입니다 처음 은혜를 받을 때는 환경에 좌우되지 않고 만족한 삶이 세속화되면서 불만이 찾아온 것입니다. 자족하는 삶을 배워야 합니다. 이 삶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축복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하고 입으로 마음으로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여야 합니다.

처음 감사절을 지킨 미국의 청교도인들의 삶이 그러하였습니다. 추위와 흉년을 극복하고 거두어들인 적은 소득을 놓고 하나님께 감사한 것에서 추수감사절이 시작이 된 것입니다. 이 감사의 시작이 세계에 파급이 되었습니다. 감사는 다른 곳으로 메아리치는 것입니다.